▲불당골 민가 화재불길에 휩싸인 민가는 채 20분도 안 걸려 지붕이 내려앉았다.
정덕수
보기엔 너무도 초라해 "싹 밀고 번듯한 새집 잘 어울리게 지어놓았으면 얼마나 보기 좋겠어"라 말하는 이들 간혹 본다. 일견 이해는 되지만 그래선 안 될 말이다. 대를 물려 정들여 산 집을 쉬 손을 못 대는 마음을 헤아려 줄 정도는 돼야 사람이다.
얼핏 보기엔 샌드위치패널로 지은 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고 깨달았다. 누군가 물려받은 땅 한 뼘 없는 낯선 곳에 정착해 깨어낼 수도 없는 너래 위에 시멘트벽돌로 보금자리 꾸몄던가보다. 벽돌 한 겹 쌓아 지은 집은 찬바람은 막아줘도 춥다. 가족이 함께한다는 온기로 그렇게들 살았겠지.
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대를 물려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 행복했던 집, 속빈 시멘트블럭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 여겨 헐어내진 못했으리라.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을 붙이고 거기에 비닐사이딩패널로 마감해 제법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었던 집이다. 바로 아버지를 닮은 집, 엄마를 닮은 집이다. 어버지와 엄마의 살가운 정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집을 그렇게 살갑게 꾸미며 살던 보금자리다.
지척에 번듯한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집체보다 큰 바위가 치워지고 너래를 깎아 길이 만들어 자동차들이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고나는 걸 부러워하지도 않았으리라. 정으로 쪼고, 시멘트로 계단을 만들어 밴들거리기 시작한 바윗돌에 길을 내 살아도 행복했으리라.
그런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속절없이 불타는 걸 지켜본 밤은 무서웠다. 최소 3채가 흔적조차 불길에 사라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건 악몽이다. 어디서 불덩이가 날아올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가쁜 숨을 몰아쉬기를 몇 번. 그 현장에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젊은이 몇 명이 소방호스를 어딘가에서 연결해 끌고 와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불과 10미터 간격을 두고 불길이 치솟건만, 그들은 필사적으로 물을 뿌렸다. 한 집이라도, 그리고 또 한 집이라도 온전히 지켜주려는 그들은 이 집들이 지닌 의미를 알고 있다.
[속초 동명동 영랑호반길] 가로등이 꺼졌다, 가스통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