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아차산에서 찍은 온달 부부.
김종성
'바보가 어떻게 1등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온달이 바보로 불렸던 것은 지능 때문이 아니었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에 따르면, 온달은 얼굴은 웃음이 날 정도로 못났지만, 마음씨는 고왔다. 여기에 더해, 홀어머니를 봉양하고자 다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평양 시내에서 밥을 얻으려 다녔다.
"해진 적삼에, 다 떨어진 신발로 시내를 왕래하니, 사람들이 그를 지목해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고 온달 열전은 말한다. 얼굴·옷차림 및 착한 마음씨에 더해 구걸 행위가 복합적으로 풍기는 이미지로 인해 '바보 온달'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구걸을 많이 했다는 사실에서, 온달의 경제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온달 열전은 "집이 매우 가난했다"고 말한다. 먹을 게 없어 느티나무 껍질로 연명할 정도였다. 부잣집 노비로라도 들어가 농토를 얻었다면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겠지만, 그는 그런 기회도 얻기 힘든 최하층 빈민이었다.
그렇게 알려져 있었던 온달이 사냥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하니, 세상이 놀랐다. 기마술과 사냥술을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과 장비를 고려할 때, 최하층 빈민이 동네 사냥대회도 아니고 태왕이 참석한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1등을 차지한 온달이 평강태왕 앞에 불려가기 전까지, 누구도 그가 온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가 평강태왕의 공주와 결혼한 남성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이는 온달이 누구의 '빽' 없이 자기 실력으로 1등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로지 자기 힘만으로 얻어낸 성과는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귀금속과 패물을 들고 나타난 공주가 경제력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온달의 잠재적 능력은 말 그대로 몸속에 잠재된 채 사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공주가 제공한 빈곤 탈출 및 계층이동의 기회가 온달의 성공신화를 가능케 한 결정적 동력이었다.
바보 온달과 같은 신화, 2019년에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온달의 성공 신화를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접하기는 쉬워도, 실제 체험하거나 목격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현대판 온달'이 출현할 기회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층이동 또는 신분 이동의 기회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의미의 계층이동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학술 연구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재정학회가 2018년에 발행한 <재정학 연구> 제11권 제1호에 실린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의 논문 '소득계층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고찰: 재정패널조사 자료를 중심으로'를 보면, 이러한 경향이 계속 심화하고 있음을 절감할 수 있다.
소득과 납세액, 복지 혜택 등을 근거로 전체 가구를 10등분 한 이 논문에서, 1분위는 최하층, 10분위는 최상층을 의미한다. 1분위에서 3분위까지는 논문에서 말하는 빈곤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