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해, 상고법원 위해... 그들은 너무도 꼼꼼했다

[사법농단-임종헌 5차 공판] 정다주 부장판사 "사법부 권한 남용 내용에 부담 느껴"

등록 2019.04.03 10:29수정 2019.04.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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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상고법원 설치라는 목표 앞에서 양승태 대법원은 철저히 박근혜 정부의 심기를 챙겼다.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5차 공판은 양승태 대법원의 '꼼꼼함'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이날 재판부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과 함께 일한 정다주 현 의정부지방법원 부장판사의 증인 신문을 진행했다(관련 기사 : 사법농단 '적극' 충성한 판사... 검찰에서 상세히 말하겠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에서 청와대로 보낸 여러 문건의 작성자다. 검찰이 법정에서 제시한 문건들의 내용은 다양했다. 목적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개입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소송, 통상임금소송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판결취지를 청와대에 설명하는 것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사법부 권한이 남용된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부담을 느꼈고, 민감한 것이라 피고인(임종헌)에게만 보고했다"던 검찰 조사 진술을 법정에서도 유지했다.

"정부가 긍정적으로 볼 판결 뽑아달라더라"

이 보고서 중 하나가 2015년 7월자 '현안 관련 말씀 자료'였다. 정 부장판사가 대외비로 작성한 이 문서의 첫 번째 소제목은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고침)'이다.

이 보고서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며 '과거 정권의 적폐해소'를 위해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했다고 꼽았다. 또 '자유민주주의 수호' 사례로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국가경제발전 최우선 고려' 사례로 통상임금 사건 등을 거론했다. 쌍용자동차와 KTX 승무원들의 대량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판결은 '4대 부문 개혁 중 가장 시급한 노동 부문'에 해당했다.

정 부장판사는 "제목은 피고인이 달아달라고 했다"며 "정부·여당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한 판결 자료를 뽑아달라고 해서 그러한 관점에서 작성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참석한 2013년 10월 청와대 정례회의에서 부처별 사업 통합을 논의할 때 청와대가 '한류'란 이름을 붙이길 원했다고 밝혔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은 사법제도 등을 수출해 창조경제에 이바지하겠다는 보고서도 작성했다.


정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3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검토문건' 역시 작성했다. 이때 대법원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으나 고용노동부가 다시 항고한 사건을 심리 중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이 문건에서 청와대가 현재 상황에 불만을 드러냈고, 대법원이 고용노동부 의견을 인용해야 사법부와 청와대 모두에게 이득이라고 썼다. 특히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결정 전에 결론을 내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일 그는 임종헌 전 차장이 당시 "(재항고 인용) 결정이 대법원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말한 내용을 토대로 쓴 보고서라고 했다. 다만 '극적 효과'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이미지 개선을 위함이라고 이해했다"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가 상세한 뜻을 거듭 물었지만 정 부장판사는 기존 답변 이상을 말하진 않았다.


'극적 효과'와 '이미지 개선'의 속뜻은 정 부장판사가 만든 여러 문서와 그의 법정 진술에서 드러났다. 바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최대 역점사업으로 했던 게 맞고, 입법을 위해 전체 부서를 투입하는 등 행정력을 동원했냐"는 검찰 질문에 정 부장판사는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자신조차 상고법원이 들어서면 판사들이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더 심하게 볼 것이라고 우려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재판 영향 생각해본 적 없다"지만... 목표는 상고법원

그러나 정 부장판사는 "(보고서에) 표현이 과격한 부분 등은 있지만 심의관인 제가 대법원의 결론을 예측하거나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그걸 좌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보고서는 대응방향보다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방점이 있었다"며 "만일 이러하다면, 그중 빠르게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런 문건들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10시 시작한 재판은 자정에 가까워서야 마무리됐다. 윤종섭 부장판사는 증인 신문을 마치기 직전, 증인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정 부장판사는 주저하며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증인으로 출석하는 당시 심의관(판사)들이 있을 터인데...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은 단지 행정 조직이 아니고 법관들로 이뤄져 그 특수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에선 조직의 성격이나 그 안에서 이뤄진 여러 일들, 구성원들의 인식이나 의사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다만 재판장님과 두 분 판사께서 그런 부분을 충분히 살펴주실 수 있을 것 같다. 저와 같이 특히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했던 심의관조차도 전체적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나아가 이 사태 전반에 있어서, 이 사건으로 사법부가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밝혀주셨으면 좋겠다." 


한편 2일 재판부는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사무실에서 확보한 USB를 증거로 채택했다. 법원행정처 시절 작성된 내부문건이 담긴 이 USB를 두고 임 전 차장은 검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압수수색 절차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증인 신문 방식과 내용, 증거 조사 등을 두고 여러 번 의견을 제시하다 재판부에 제지당하기도 했다.
#사법농단 #임종헌 #양승태 #박근혜 #상고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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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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