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치명적인 단점, 끈기 부족. 그렇게 끈기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권이나 되는 분량의 책을 썼는지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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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의지와 금방 싫증내는 성향은 글쓰기에서도 금세 티가 났다. 제목 한 번 멋들어지고 목차도 그런대로 잘 짜여진 원고의 기획안이 지금 노트북 안에 얼핏 세어봐도 다섯 가지가 넘는다. 이걸 제때 완성했다면 난 지금의 이 모습이 아닐 거라 장담한다.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완성하지 않았던 탓에 난 여전히 뭔가 좀 아쉬운 작가로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들을 완성하는 것이 내 인생을 참 많이 바꿀 것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그것들을 완성하기가 돌덩이처럼 부담스럽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자 희망이다.
첫 책의 원고를 더듬더듬 만들어가던 시절로 돌아가보겠다. 경쟁 도서, 유사 도서라는 기본 개념도 모른 채 쓰고 있는 원고와 딱 비슷한 책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참고하거나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그 책은 열어보면 안 되는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멀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한 풋풋한 시절의 에피소드이지만 그때 그게 아니었다면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에 얼굴이 좀 이상했다. 이유를 알지 못할 피부질환으로 얼굴 전체가 새빨갛게 뒤집어졌고 고름이 줄줄 흘러 그게 너무 가렵고 쓰라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얼굴로 어디도 나갈 수가 없었다. 꼭 가야하는 곳에만 마스크를 쓰고 갔는데, 그도 다 가려지지 않아 이마와 턱의 벌건 피부는 사람들을 놀래켰다.
그 얼굴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그 꼴로 하루 종일 집에 틀여박혀 글을 썼다. 누구를 만날 수도 커피 한 잔 하러 동네를 나갈 수도 없으니 집에 콕 박혀 울며 겨자먹기로 원고를 꾸역꾸역 완성했다. 도대체 어디쯤이 완성인지 알 수 없는 깜깜한 심정으로 썼고, 다행히 원고를 완성하고 계약서를 쓰러 나가던 즈음에는 두꺼운 화장으로 가릴 수는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의지 약한 내가 한 권의 분량을 완성하게 된 건 단언컨대 그때 그 피부질환 덕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내 약해진 의지로 약속을 잡아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헬스장의 방송댄스로 바쁘게 보냈을 터인데 그도 저도 하지 못하게 된 덕분이었다.
처음으로 완성이란 것을 맛보고 나니 내가 조금 달라졌다. 어쩌다 주말에 낮잠을 곤히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으려고 하면 평소와 다른 개운하고 상쾌하고 색다른 컨디션이 느껴지는데, 첫 원고를 완성하여 책을 손에 잡은 이후의 느낌이 꼭 그랬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백쪽짜리 원고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을 듯한 배짱이 생겼다. 그렇게 엉겁결에 어설프게 완성한 내 원고가, 내 책들이 맘에 들었느냐, 그건 아니다.
책이 나오고 나면 후회와 아쉬움에 며칠 간 찝찝한 기분을 버릴 수 없게 맘에 안 드는 구석들이 발견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했음이, 완성하여 미약하게나마 초라하게나마 책이라는 모습을 가진 어떤 것으로 만나게 되었음이 다행스러워 그게 정말 감사하여 단잠을 청한다.
글이 책이 된 것을 완성이라 단정짓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뭐 이런 걸 책으로 담았어?라는 말이 불쑥 나오게 만드는 형편없다고 하는 부류의 것이나, 도대체 이건 무슨 정신으로 교정을 한 거야 싶게 틀린 맞춤법과 비문이 종종 눈에 띄는 성의없는 것들도 책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걸 나도 안다.
마찬가지로 내가 책이랍시고 온 정성을 다해 열심히 적어낸 글들도 누군가에게는 형편없는 글 나부랭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어떤 것을 완성했다는 것, 완성하여 이름을 달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 노트북 속에 잠자고 있는 원고 파일들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쓰기가 힘들다면, 한 가지만 명심했으면 한다.
"완성하라."
책 한 권이든, 글 한 편이든, 편지 한 장이든, 냉장고에 붙일 메모 쪽지 한 장이라도 좋으니 쓰기로 맘먹은 무언가는 꼭 완성하라. 쓰기 시작했다면, 기필코 완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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