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수협회장실에 걸린 현황판 모습
오문수
이런 결정을 듣고 필자가 궁금한 게 있었다. 필자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궁금증은 "전국에 있는 수많은 섬 중에 왜 하필이면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추자도 출신을 전국섬주민협의회 회장에 앉힐까?"였다. 때마침 며칠 전 (3월 20일) 이정호 추자도 수산업협동조합장이 9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는 소식을 들어 추자도를 방문해 대화를 나눴다.
-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선원생활을 시작했다면서요?
"저는 추자도에서 9대째 살고 있으며 저와 손자까지 합치면 11대가 살고 있는 셈입니다. 추자초·중학교를 졸업 후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고통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친이 술을 좋아해 술 드시고 오면 어머니와 자식들을 괴롭혔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저는 성장하면서 술과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배에서 밥해주는 '화장'으로 취직하며 선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맨 처음 탄 배의 선원생활은 어땠나요?
"10톤 동력선인 '어진호'가 잡는 고기는 철에 따릅니다. 여름철에는 재원도에서 부서와 병어를 잡고 겨울에는 추자도 인근에서 삼치, 방어, 도미, 갈치 등을 잡았습니다. 당시 일본에 활어를 수출했어요. 철따라 그물, 주낙, 낚시, 채낚기, 멸치 등의 어업에 종사했습니다. '화장' 직으로 2년 동안 월급을 3만원 받다가 정식 선원이 되어 3년 동안 4만원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22살에 추자도 최연소 선장으로 발탁됐습니다. 추자도에서 방위근무 중 독자라는 이유로 6개월만에 의가사 제대한 후 목포에서 선장 면허증 시험에 합격해 추자도로 돌아오던 중 육지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