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신익희 선생과 함께 상해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조소앙 선생. 선생은 대한민국임시헌장 작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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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선생은 당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밝힌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지어다"에 따라 일제강점에서 해방정국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격랑기에서 '독립과 민주공화국 수립'을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분이다.
그 추운 겨울, 1700만의 우리가 촛불을 들고 외쳤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가장 먼저 선언한 이가 바로 조소앙 선생이다. 100년 전, 지금의 우리가 외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 땅에 뿌리내린 선구자가 바로 조소앙 선생이다.
그런데 민족의 어른으로 존경받아야 할 조소앙 선생을 나는 왜 몰랐을까? 나의 무식함에 부끄러워하며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답이 나온다. 물론 나의 역사무지도 원인이겠지만 조소앙 선생의 애국적 삶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댄 일부 몰지각한 후대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조소앙 선생의 삶에도 '빨갱이'라는 이념 잣대를 들이댔던 그들. 북한에서 서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생을 역사의 음지에 묶어두었던 그들의 폭력에 낯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라도 다행이다. 3·1운동 100년을 맞아, 지난 역사가 음지에 가두려 했던 민주주의의 어른, 조소앙 선생이 양지로 나와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이제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외출길 버스 안에서, 서울 곳곳에서 살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 역사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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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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