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발전사일제의 식민지배 이후 충주의 식민지적 변화상 소개 충주발전사
이영
'적극적 일제협력자'가 독립운동가로 둔갑
사정이 이러한데도 촌극 <100년의 재회>에서 정운익은 마치 민족운동가처럼 그려진다. 그것도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의 입을 통해서 정운익은 훌륭한 일을 하신 분으로 묘사되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 같은 독립운동가로 이 분들과 동등한 충주의 위인으로 나온다.
안타깝게도 지면이 부족해 문제가 된 연극의 대본을 다 올릴 수는 없으나 일부만 보더라도 정운익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촌극의 대본에 의하면 류자명 선생과 권애라 선생은 끊임없이 정운익에게 훌륭한 일을 했다고 칭찬한다. 게다가 중학교 설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충주시민의 만장이 10리에 걸쳐 늘어섰다는 말까지 나온다.
권애라 선생의 대사 중엔 "독립운동을 한 충주 분들이 많이 계시는 걸로 아는데, 왜 우리만 여기에..."라며 권애라 선생의 입을 통해 정운익을 독립운동가로 슬쩍 끼워넣는다. 극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정운익이 현장에서 이 촌극을 관람하던 조길형 충주시장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시장님, 내년이 3·1운동 100년입니다. 내년에는 우리 세 사람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을 보태셨던 충주 출신 독립운동가분들을 모두 충주로 모셔보면 어떨는지요?"
이 부분에 이르면 정운익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운동가가 된다.
연극은 창작의 영역이고 상상의 소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창작이니까 괜찮다고 포장될 수는 없다. 특히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그릴 때는 더욱 철저히 사실에 기초해야만 한다. 근래의 작품들 중 <청연>, <미스터 션샤인>, <야인시대>, <명성황후> 등 역사 왜곡으로 인한 논란은 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적극적 일제협력자'를 독립운동가로 둔갑한 사례는 흔치 않다.
충주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충주에서는 2016년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또 있었다. 그때의 주인공은 마라토너 '권태하'였다.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닌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 대동아성에서 근무했고, 협화회, 계림회 등의 친일협력단체에서 활동했던 자를 독립운동가로 만들려던 시도가 있었다. 2016년 7월 신동아에 <총도, 칼도 없이 민족명예 위해 싸워보라!>라는 제목 아래 '마라톤 개척자 권태하의 '스포츠 독립운동''이라는 소제목으로 글을 올려 마치 권태하가 독립운동가인 양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 연극의 대본을 썼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00년의 재회> 연극이 문제가 되자(팸플릿에는 작가 이름이 안 나와 있다) 대본을 쓴 사실을 부인해 오던 김희찬씨는 자신이 대본을 썼다는 사실과 함께 그 증거로 대본과 입장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글에서 "정운익이 1922년에 충청북도 평의회 충주군 평의원으로 시작해 1927년 갑자기 죽기까지 만 5년을 평의원을 했으니 일단 대상자 명단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을 펼쳐보라, 거기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는가를"이라며 <친일인명사전>에 오르지 않았으니 그는 친일인물이 아니라며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도회 의원을 역임한 국회의원 김무성씨의 부친 김용주의 친일논란 사례에서 보듯 <친일인명사전>은 증거 자료가 더 필요할 경우 수록하지 않고 추가 조사를 한다. 대상 인물의 행위와 지위를 엄격히 확인한 후에야 수록하는 것이다. 이렇듯 친일인물을 계속 조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없다고 해서 친일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도의원을 두 번이나 역임하고, 농회 특별위원이었으며, 일제강점기 충주 일본인 사회의 최고 실력자들과 함께 지역의 유력인사로 소개될 정도의 각종 활동에 참여한 사실이 친일협력이라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 친일협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연극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점은 하나다. 정운익은 그의 활동상을 볼 때, 친일협력자일 뿐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충주시의 황당한 행보
이런 말도 안 되는 촌극의 극본을 쓴 김희찬, 총연출이었던 김수희 등은 이 연극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 또 문제의 연극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선명하게 찍힌 충주시 후원에 대해서도 충주시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충주시는 예기치 못한 행보를 보였다.
이 문제의 연극을 만들어 공연했던 핵심인물들이 또 다시 연극을 준비하고, 이 연극을 충주시가 후원한다는 소식이 2018년 12월 중순에 전해졌다. 2018년 12월 말 이 연극이 역사 왜곡의 문제가 있음을 알았던 충주지역사회연구소는 증빙자료와 함께 충주시 문화예술과를 찾아 내용을 설명하고 지원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충주시는 연극 내용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알겠으나 내용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고, 후원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이 연극에 대한 지원 여부 결정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2월 20일 경 페이스북에 충주시에서 진행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중 연극이 있었고 이를 충주시가 지원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