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퇴적토를 들어 보이는 박창근 교수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는 자타공인 '현장파' 전문가다. 4대강사업 이후 낙동강만 100회 이상 조사했고, 한강, 금강, 영산강 현장도 수십 회 진행했다.
이철재
박창근 교수는 '현장파'다. 이론만 파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현장에 직접 뛰어든다. 그가 우리나라 물 정책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게 된 건 2002년 태풍 '루사' 때였다. 박 교수는 "추석 동안 집에도 안 가고 피해 현장을 조사했다. 1년 동안 복구 과정을 조사하면서 하천 정비에 있어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 "홍수가 일어나면 제방만 자꾸 높이는데 그건 지속할 수 없는 방식"이라며 "하천에 더 많은 공간을 내주는 것이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구조물 중심의 치수 정책은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2006년 수자원 장기종합계획 수정작업에 참여했다. 속초 청초호 유입 지점의 하천 폭을 넓히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문제는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창근 주의보'... 4대강 현장 접근을 막아라
박창근 교수는 자타공인 4대강 저항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과 국정원은 4대강 비판 전문가를 사찰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압박과 회유를 했음에도 그는 시대의 상식과 학문적 양심을 지켰다. 같은 학교 실험실 선배인 심명필 전 4대강추진본부장에 맞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현장을 많이 다닌 것 같다. 낙동강만 해도 100번 이상 다녔다"고 답했다. 그와 다닐 땐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한강, 금강, 영산강을 수없이 다녔다. 아침부터 시작된 현장 조사는 저녁까지 이어졌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경우도 많았다.
2011년 초, 박 교수는 새벽에 보트를 띄워 함안보 직하류의 수심을 측량했다. 설계상 수심이 6m 정도 나와야 하는 지점에서 26m가 나오자 그는 측정기에 오류가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낙동강 하구에서 측정기를 다시 사용해 보고서야 함안보 수심 측량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른바 'MB 싱크홀'이라 불리는 함안보 세굴 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순간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공사 관계자에게 박 교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현장을 왔다 가기만 하면 감추고 싶은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들은 박 교수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 공사 현장으로 이어진 도로를 차단했다. 보트를 띄울 수 없게 차량을 보트 앞에 세워두고 사라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