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9’은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국회발언’ 관련 리포트를 2꼭지에 총 4분 6초를 할애했다. 하지만 이날 알려진 발언의 팩트체크는 하지 않았다.
KBS
앵커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시청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와 수준이 달라진다. 이것은 곧 뉴스 심층성 강화 요인이다. KBS '뉴스9'에서 앵커는 정준영 성폭력 사건 보도 제1꼭지에서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왜곡된 성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며, 정준영 성폭력 사건을 개인의 범죄 행위가 아닌 사회전체 문제로 규정하는 듯한 말을 한다.
제4꼭지인 대담 코너에서도 '혜화역 집회' 사건을 언급하며 사회 문제 차원에서 사건에 접근한다. 앵커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번 사건을 남녀 성대결 구도로 보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질문을 기자에게 던진다.
보도 내용의 관련성을 따져봤을 때 앵커의 이런 질문이 적절한가에 관해서는 의문이다. 제1꼭지에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의식'이라는 말을 하려면 적어도 정준영 성폭력 사건을 '가볍게 여기는 반응' 정도는 함께 보도해야 했다. 그런 맥락 없는 발언은 오히려 정준영 개인의 범죄에 면죄부를 부여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엄연히 '범죄'다. 범죄 혐의를 놓고 어떤 성대결을 펼칠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관련된 추가 보도도 없다. 이런 질문을 하려면 '정준영 행위를 두둔하는 남성집단의 존재가 있다' 또는 '이번 사건으로 남녀 성대결 구도가 펼쳐졌다'는 내용의 취재가 뒷받침 돼야 한다.
양보다 질로 승부 봐야 해
사안에 대한 리포트 꼭지 수를 늘린다고 해서 심층성이 자연히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KBS 정준영 성폭력 사건 보도를 보면 4꼭지 중 1꼭지는 2분 1초로 보통 리포트가 1분 30초인 것에 견주면 30초 정도를 더 할애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은 '정준영이 경찰 조사를 위해 귀국'했고 '과거 같은 혐의로 방송 중단 이력이 있다' 뿐이다. 제3꼭지에서도 기존 리포트 분량보다 더 많은 시간인 2분 24초를 할애해 휴대전화를 압수하지 않은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했다.
같은 날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한 '정준영, 3년 전 '불법 촬영 파문' 재조명…당시 무혐의 사유는'이라는 1분 28초 리포트에서는 다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뉴스룸'은 당시 수사상황을 지적하며 경찰이 왜 휴대전화를 제출받지 못했는지, 그리고 이후 정준영이 검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한 정황에 관해 설명한다. JTBC가 KBS보다 시간은 짧지만 정보는 더 많이 담고 있다.
KBS가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는 듯한 모습은 지난 1월 8일 화요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방중'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서도 나타난다. 5꼭지를 연달아 배치한 당시 보도는 제1꼭지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 중국 방문 소식을 전하고, 제2꼭지에서 중국 특파원을 연결하고, 제3꼭지에서 워싱턴 특파원을 연결하며, 제4꼭지에서는 청와대에 나가 있는 기자를 연결하고, 마지막 제5꼭지에는 스튜디오에서 금철영 통일외교부장을 불러 대담한다.
숨가쁘게 중국, 워싱턴, 청와대, 스튜디오까지 오가는데, 문제는 숨만 가쁘고 정보는 '가뿐'하다는 점이다. 각 리포트는 각각 1분 58초, 2분 57초, 2분 19초, 1분 58초, 3분 47초로 약 13분의 시간을 배분했다. 그러나 각각의 리포트가 보여주려 하는 주제가 모두 달라 주어진 시간에 현안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