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 현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에 거주 중인 윤케티씨(친어머니 윤정주)가 친아버지를 찾고있다. 당시 어린아기인 윤 케티씨.
윤케티
저는 어릴 적 두 번 입양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태어난 뒤 한국 양어머니와 주한미군이셨던 양아버지께 한국에서 입양된 것이고, 두 번째는 제가 네 살 때 미국 가정으로 재입양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저를 입양한 양부모님들은 한국계 미국인 어머니와 미 육군에서 제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친아버지의 존재를 안 것은 학생 때였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양어머니가 제 친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걸 양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양어머니는 제게 친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 돼서야 양어머니는 친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약 1분간의 짧은 통화였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는 "사랑한다. 많이 보고 싶구나"라는 말과 함께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탓에 한국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때 했던 "미안하다"는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버지와 다시 통화할 수 없었습니다. 양어머니께서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한국말을 잘하지 못했고, 대학 공부로 바빴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업으로 인해 매우 바빴던 데다 대학 등록금도 스스로 마련해야 해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 양부모님이 비용을 전혀 지원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친아버지는 입양 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제게 연락하려고 몇 번 시도하신 것 같습니다. 양어머니에게 본인의 연락처를 전해주셨다고 합니다. 양어머니와 친아버지는 1993년까지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셨지만 양부모님은 제게 친아버지 연락처를 주지도, 제가 친아버지와 통화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친아버지는 1990년대 초반에 친할머니와 사촌들이 찍은 사진들을 보내오셨습니다. 저는 그 사진들을 아직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양어머니와도 연락이 끊기면서 아버지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졌습니다. 양어머니께 아버지의 연락처를 받으려고 몇 번을 부탁했지만 양어머니는 '연락처를 버렸다'는 말만 되풀이하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찾으려 노력했고, 지금도 찾고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아버지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아버지를 찾기 위해 더 노력하지 못했던 점을 설명해 드리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부녀지간의 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뿌리 찾기] 돌아가시기 전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