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예술제를 즐기는 아이들.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익힌 자기계발 작품을 모아 해마다 전시하는 골목예술제. 이제는 송악놀장과 결합해 더 큰 축제의 한 장르로 어우러졌다.
송악동네사람들
송악면은 2018년 기준 4400여 명이 살고 있다. 2000년에 비해 1200명이 늘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 송악면 딱 2곳뿐인 초등학교 중 거산초등학교는 2000년 39명에서 120명으로 늘었고 송남초등학교는 87명에서 250명으로 늘어났다. 약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시골은 인구가 격감하는데 송악면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난 걸까.
송남초 분교였던 거산초는 2000년대 들어 정부의 작은 학교 통폐합 대상이 되어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대응했다. 주민들 노력으로 거산초는 살아났고 거산초를 '공교육 안 대안학교'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학부모와 뜻이 같은 교사들이 결합하면서 거산초는 '전원형 작은 학교'로 거듭났다. 거산초 아이들은 나가지 않게 하고 도시 지역 아이들이 거산초에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농촌을 살릴 대안으로 선택한 학교운영방침이었다.
송남초는 달랐다. 송남초 학부모들은 시골에서 살며 아이를 키우고 싶어 온 이들이 많았다. 거산초가 학교 교육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형태라면 송남초는 마을이 중심이 되어 학교를 바꾼 사례다. 송남초 학부모들은 마을 특성에 따른 교육을 학교에 요구했다.
"마을교육공동체라는 말이 있기 전부터 우리 마을에선 아이들 돌봄을 해왔어요. 당시 학교는 그 역할을 해낼 체계가 없었어요. 지금도 운영하는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이하 반디)가 그 시작이었죠."
홍승미 사회적협동조합송악동네사람들(이하 송악사람들) 상임이사는 마을교육공동체 형성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IMF 이후 전국에 도산한 기업이 늘어나자 실업자 역시 급증했다. 가정경제 유지가 어려워지자 이혼가정도 늘었고 자녀부양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시골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났다.
송악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송남초 상황은 심각했다. 2004년까지도 해도 조부모 가정이 70% 이상이었다.
홍승미 상임이사는 "IMF 이후 마을에 아이들이 부쩍 늘었어요. 근데 조부모가 해줄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당시 마을에 살던 이종명 목사는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일탈을 목격했다. 이 목사는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절감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이 목사는 홍승미 이사와 김영미씨(현 반딧불이지역아동센터장)에게 방과 후 아이들 돌봄을 부탁했다. 현실을 져버릴 수 없던 홍승미 이사는 당시 수익 좋은 과외를 그만두고 김영미 센터장과 함께 '반딧불이 교실(이하 반디)'이란 이름으로 돌봄을 시작했다.
돌봄으로 시작한 주민 후원과 발표회, 주민참여 마을 축제로 거듭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