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상태에서는 비가 내려도 벚꽃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이 핀 상태, 그러니까 온통 벚나무가 하얗게 보인다 할 정도일 경우 비가 내린 다음날은 벚꽃이 모두 떨어지고 만다.
정덕수
인위적으로 조성한 벚꽃길은 그렇다 치자. 말 그대로 천연의 벚꽃동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양양군 서면 오색1리 일원의 44번국도 맞은 편 산자락은 그럼 언제 벚꽃이 절정일까가 가장 궁금하다.
20년 전 당시 오색2리로 행정구역상 불리는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선배가 제안했다.
"아우, 마을축제를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좀 도와줘."
"형님, 축제를 만드는 데 도와달라시니 전 이제 여기 온지 불과 반 년 지났을 뿐입니다. 제가 뭘 알아야 돕든가 말든가 하죠."
"왜 서울에 있을 때 벚꽃구경 가본 적 있을 거 아녀? 창경원이나 진해군항제나?"
"형님, 창경원은 진즉에 창경궁으로 거기 있던 동물원을 없애며 원래의 이름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 20년 이상 살면서 창경궁 한 번 안 갔고, 남산식물원도 안 가봤어요."
돌아치기 좋아하는 걸 뻔히 아는데 창경궁 벚꽃구경 한 번 안 가고, 남산식물원도 안 가봤다는 말에 선배는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너 거짓말 하는 거 다 알어. 내가 도와달라니까 그렇게 거짓말 하는 거란 걸' 이런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던 선배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진해군항제나 창경원 이야기 한 이유가 있어. 벚꽃이 유명하잖아."
창경원이 아니라 창경궁이라고 바뀐 게 언젠데 싶었지만 재차 지적하는 건 예의는 아니다 싶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거긴 사람들이 심은 벚나무로 축제를 하잖아. 여기 오색엔 자연산 벚나무가 정말 많거든. 내가 그동안 양양하고 오색 사이를 수 없이 오르내렸어. 뭐 이장을 맡다보니 더 그랬기도 하지만, 어쨌든 빨딱고개를 넘어 오색쪽으로 내려오면 송어리부터 구라우까지 벚나무가 많은데 여기 꽃이 피면 정말 아름다워."
"형님, 벚꽃으로 축제를 하실 생각이세요?"
"그래 맞어. 산벚나무에 핀 벚꽃을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 그걸 알리면 약수도 잘 안 나오는 오색에 또 다른 관광자원이 될 거야."
선배 나름으로 제법 오랜 날들을 마을을 어떻게든 잘 되게 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방향은 정말 좋지만 정확하게 꽃이 필 시기를 장담할 수 없으니 문제다.
"형님, 진해도 군항제를 하면서 매년 공무원들이 애를 먹어요. 정확하게 축제 날짜와 맞춰 꽃이 피지 않아서죠. 어떤 해는 늦게 피고, 또 어떤 해는 너무 일찍 피기 시작해서 나무 밑동이 얼음까지 쏟아 붓기도 한다잖아요."
"그거야 알지. 그런데 여긴 거의 일정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2~3일 정도만 다르거든. 그리고 가장 보기 좋을 때는 4월 20일 정도야."
그렇게 시작된 얘기가 그해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오색 산벚꽃 축제'란 이름으로 열렸다. 하지만 벚꽃은 그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피더니 축제를 할 땐 이미 주전골에 올라가야 벚꽃을 만나게 됐다.
차라리 감자나 옥수수, 또는 산채음식이 유명한 마을이니 산나물을 주제로 축제를 했다면 좋았을 일이다. 꽃봉오리 맺힌 걸 확인하고 축제를 시작하면 좋겠지만 운영을 맡을 조직을 구성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축제는 미리 준비를 마치고 꽃이 필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한 뒤 곧장 시작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
반드시 축제란 이름으로 알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곧장 행동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단 말이 있다. 자신의 장점을 아무리 잘 포장해도 객관적이지도 않거니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효과적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저 평소대로만 행동하고 다른 누군가가 이를 챙겨주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