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풍요로운 분위기의 리스본 거리. 명물인 트램이 거리 곳곳을 누빈다.
최늘샘
세비야의 오누이
"영국 여행자 이사벨라 버드 여사가, '여행자는 가장 서툰 짓을 능하게 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고 했는데, 그런 특권을 마음껏 누리다 왔으면 좋겠다."
7년 전 인도 여행을 떠날 때 여동생 예슬이 해준 말을 이번 여행에서도 종종 생각한다. 말도 글도, 길도 문화도, 모든 게 낯선 여행자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치 덜 보고, 몰라도 막 부딪혀 보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때로는 뭔가 실수나 잘못을 할 때도 여행자니까 괜찮다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1년 동안 덴마크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이주노동을 한 뒤, 아프리카와 유럽을 여행하던 예슬을 2년 만에 세비야에서 만났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세비야까지는 버스로 일곱 시간. 유럽연합 가입국들이라 국경 검문도 필요 없이, 그저 강을 하나 건너니 나라가 바뀌었다.
예슬은 덴마크의 일식집과 베트남 음식점에서 일했는데, 열두 시간 넘게 초밥을 말았다거나, 월급의 40퍼센트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데 혜택으로 돌아오는 건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렇게 살기 좋다는 덴마크인데 기본 근로기준법도 안 지키드나?! 이주노동자라서 그렇겠지. 와, 젠장, 덴마크도 별 수 없네!"
한탄스러웠다. 다른 나라들의 선망을 받을 정도로 안정된 복지국가인 덴마크에서도 비국민에 대한 차별은 확실했다. 자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서비스직 이주노동자로서의 고생이 꽤 많았으리라.
스물한 살에 알바로 적은 돈을 모아 배를 타고 인천항을 떠난 동생은, 세 살을 먹은 뒤에야 남한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여행을 자주 하는 그는, 일상에 갇혀 살아가는 나에게 가장 직접적인 자극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땡전 몇 푼 없어도 여행을 시작하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친구들과 더불어 사는, 집시 같고 히피 같은 사람이다. 여행의 소소한 기술들, 현지인의 소파를 빌려 숙박을 해결하는 '카우치서핑'도,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차를 공유하는 '블라블라카' 도 그가 알려주었다.
2년 만에 만난 누이와 보낸 9일.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781년 동안의 이슬람 지배로 인해 아라비아와 유럽 문명이 뒤섞여 독특한 모습을 띈 안달루시아 지방. 그곳의 많은 것을 함께 보고 경험했어야 하는데, 리스본에서 시작된 유라시아 감기몸살은 기어이 꼬박 일주일을 넘겼다.
세비야와 그라나다 거리의 가로수는 대부분 오렌지나무였다. 아시아에서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오렌지나무. 과일 하나에도 세상의 세월이 담겨 있다. 겨울이라 주렁주렁 열린 오렌지들을 종종 따먹으며 골목 골목을 걸었다.
나는 보통 만 원 이하 최저가 다인실 숙소에 묵는데, 자기도 가난한 배낭여행자면서 '이럴 때 좋은 데도 묵어보는 거야' 하고 너스레를 떨며 아픈 나를 챙겨주는 동생 덕분에 편안한 숙소에서 머무르며, 불고기와 파쪼래기, 감자볶음 같은 고향음식을 해먹었다.
그가 루마니아의 한국 슈퍼에서 일부러 공수해 온, 그야말로 '항공 수송' 해 온 라면과 카레는 몸 속에 인이 박힌, 남한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