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 도장공은 각종 발암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승인 과정에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인크루트 직업사전
첨부된 의무 기록상 폐암이 이미 뼈에 전이된 상태였다. 어떤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우울한 상태는 아닐지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걱정과 달리 다소 활기찼다.
노동자는 "공무원 연금공단의 불승인이 매우 억울해 본인이 쓰던 보호구며 작업 환경이며 모두 잘 알리고 싶다"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모든 물어보라고 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보호구나 환기 시설도 없이 일해서 결국 이렇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궁금한 질문을 원 없이 했고 필요한 사진 자료들도 추가로 받기로 했다.
통화 말미에 노동자는 조심스레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소송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이에 나는 당시 업무 관련성 평가의 자료는 소송에서 절대 지지 않을 정도로 준비해야 했다.
실제로도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넓은 창고를 그냥 정비소라고 쓰고 있었고 창문에 달린 환풍기 하나가 환기시설 전부였다. 그곳에서 군용 대공포를 정비하고 색칠하는 업무를 하는데 정비 작업은 많지 않고 노후화된 장비의 도색이 주된 업무였다.
안전관리 담당자도 전문 인력이 아닌 사람이 하고 있고 이에 대한 외부 감사도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한 노동자가 백혈병이 발생해 산재 승인까지 받았음에도 여전히 방진 마스크만 쓰고 작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작업에 주로 사용된 군용 카키색은 발암물질인 크롬을 함유하고 있었다. 스프레이 도장을 통해 노출되는 경우 방진 마스크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줄 수 없었다. 오히려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더 노출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업무 관련성 평가서를 보내드리고 몇 해 지난 3월 어느 날, 소송을 통해 군무원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장 작업 노동자를 만날 때면 가끔 당시 군무원의 활기찼던 목소리가 떠오르곤 한다. 울분보단 열정이 느껴지던 목소리. 다행히 2018년 9월 21일 공무상 재해 보상의 내용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 재해보상보험법을 공무원연금법에서 분리해 제정·시행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공무상 질병과 관련한 요양 승인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지속적인 개정, 보충을 통해 불필요한 소송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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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마스크만 쓰고 일하다..." 어느 군무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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