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준영과 승리가 14일 오전과 오후 각각 '불법동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와 '성접대 의혹'과 관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출석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버닝썬 게이트'.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불법 촬영물을 SNS로 공유하는 등, 성폭력이 만연한 현실이 낱낱이 까발려졌다. 해당 SNS에 여성 연예인 이름이 회자되고, 경찰 고위직이 뒷배를 봐주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승리와 정준영이라는 아이돌 스타의 몰락에 대해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 많은 세 명의 고등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사건을 아이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아이들은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솔직히 범죄의 내용이 입에 올리기 민망한 것들이라 선뜻 아이들 앞에서 말 꺼내기가 껄끄러웠다. 하지만 빅뱅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버닝 썬'으로 답하며, 의외로 대화의 물꼬는 쉽게 트였다. 어느새 '버닝썬'은 아이들에게조차 한 시대를 평정했던 빅뱅보다 더 유명한 이름이 됐다.
"웬 호들갑? 다들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승리는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약' 운운하며 고백까지 했잖아요. 출연진이든 시청자든 그 말에 다들 박장대소했고. 정준영의 경우엔 몇 해 전 이번과 비슷한 일에 연루돼 수사까지 받았고요."
찬석이는 연일 방송과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이번 일을 '호들갑 떤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전엔 아무도 몰랐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알게 됐다는 식의 어른들 반응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연루된 아이돌 모두 재수 없게 걸렸다고 억울해 할 것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덧씌워진 '혐의'에서 자유로운 연예인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실제로 친구 중에는 두 아이돌을 앞으로 TV에서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고 말하며 언뜻 두둔하는 경우도 있었단다. 늘 대중적 인기는 범죄를 가려주었다며, 시청률에 목매단 방송사들이 머지않아 그들을 구원해줄 거라고 말했다.
범죄를 저질러 물의를 일으켜도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다시 무대에 서는 연예인들을 하도 많이 봐온 터라 새삼스럽지 않다는 거다. 늘 그래왔듯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 그들을 용서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금의 들끓는 여론도 역시 얼마 안 가서 사그라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학교 축제는 TV 쇼 프로그램 아이돌의 이미테이션
여성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위험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왔다. 성훈이는 천편일률적인 학교 축제를 그 예로 들며, 여학생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무려 두 시간 넘게 펼쳐지는 공연 무대에 여학생들은 죄다 아이돌 그룹의 춤을 흉내내는 게 대세가 됐다는 거다.
"오래 전부터 학생회 내부에서 문제가 제기되어 난상토론이 벌어졌지만, 대다수 아이들의 요구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해요. 아이들 모두가 학교 축제를 팍팍한 일상의 탈출구로 여기는 마당에, 애초 '의미'가 '재미'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요. 결국 축제는 '인정 욕구 분출의 장'으로 귀결된 거죠."
성훈이는 중고등 학생마저 섹스어필에 목매다는 현실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어느덧 우리 사회의 '불치병'이 됐다고 잘라 말했다. 이것이 비록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해도, 여성이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결코 극복될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또래 여학생들의 맹목적인 아이돌 그룹 따라 하기가 안타깝게 여겨지는 이유란다.
성훈이는 또래들 사이에서도 '여학생들은 얼굴만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고 했다. 명백한 성희롱 발언이지만, 여학생들조차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되레 맞장구치는 경우를 여럿 봤단다. 멀쩡한 교복을 줄여 미니스커트로 만들고, 화장 고치는 데만 골몰하는 여학생들의 행태를 탓하기도 했다.
내내 잠자코 듣고만 있던 준태는 성훈이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자칫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기도 모르게 남성 중심적 사회에 길들여진 여학생들과, 돈과 문화 권력에 취해 스스럼없이 성폭력을 자행한 아이돌을 두루뭉수리 뒤섞어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남의 사생활 들추고 키득거리는 게 취미가 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