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했다'로 올해 저연령층 어린이들에게 유독 큰 사랑을 받은 그룹 아이콘
오마이뉴스
- 사실 저도 생각해보면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인 편이었던 것 같아요. 제 남편과 사귈 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관련기사 : "우리 반이 난리가 났다"는 딸, 때아닌 고백 소동 http://omn.kr/rwjq), 전학 간 남학생 주소를 알아내서 편지를 보낸다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적극적일 뿐 아니라 의미있는 행동이기도 한 거 같아요. 여성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영화나 드라마에서야 풋풋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지지만 현실에서는 먼저 고백하는 여성이 손해라거나, 연인관계에서 을이 된다거나 '여자가 너무 들이댄다'는 식의 평가를 받곤 하잖아요."
- 그래서 어린 마음에 담임선생님에게 꼭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잖아요. 선생님도 끝까지 그 비밀을 지켜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
"그랬군요. 지금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가 감정을 먼저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마음을 전달한다는 건 단순히 고백을 한다에서 그치지 않아요. 그건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행동으로 볼 수 있어요."
- 아, 뭔가 뿌뜻한 기분이 드는데요? 실제로 저는 제 감정에 솔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그런 게 잘못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답장은 못 받았던 것 같아요. 흑흑. 그런데 <사랑이 훅!>이란 동화에서도 나오지만, 부모들은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아요.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내 딸이 남자친구를? 아아, 저도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어요.
"부모님들의 마음도 한편 이해는 가요. 태어나서 부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애 태우고 고민하며 돌봐왔는지 아니까요. 좋은 경험, 좋은 미래 심지어 좋은 감정만 가지고 살게 하고 싶은 부모 마음도 알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마음들이 언제나 옳고,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아기일지라도 자신의 의지와 좋고 싫음이 있었잖아요. 그걸 억지로 바꾸거나 못하게만 했나요? 때로는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져주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모른 척하기도 하잖아요. 아기와의 전쟁이 한 차례 지나가면 우린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아,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된다더니... 이 작은 아기도 자신의 의지와 뜻을 있는 힘껏 어필하는구나' 이렇게요."
- 그렇죠. 저도 머리로는 이해해요. 특히나 사랑의 감정이 막는다고 막아질 일도 아니고.
"맞아요. 기자님 말대로 막는다고 막아지지도 않아요. 젠더 학자인 김고연주님의 책<나의 첫 젠더수업>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1116명 중 42%, 중학교 2학년 1078명 중 38%, 고등학교 2학년 및 쉼터, 보호관찰 청소년 1229명 중 46%가 연애 경험이 있거나 연애 중이라고 해요. 적은 수가 아니죠?
이 책에는 연애가 청소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고 자기 중심성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요. '연애는 공부 방해꾼'이라는 건 오해라는 지적도 하죠.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184명과 남학생 181명을 조사한 결과 "연애 후 학업 성적에 변화가 없다"라고 말한 사람이 전체의 64%로 가장 많았다고 해요. 아이들의 연애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다면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물론 아이들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 소중한 경험이 되면 참 좋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우리의 욕심과 기대로 아이들의 감정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돼요. 때로는 어른이 만들어 놓은 계획과 욕심 때문에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통제하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방임과 통제, 이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다양한 길들이 있음을 기억하면서 당사자인 아이와 함께 모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감정을 우리 마음대로 없앨 수 있거나 없애야 한다고만 생각하지도 말고요. 솔직히 모든 아이들이 그 시기에 공부만 한다고 우리 뜻대로 다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 '방임과 통제, 그 사이의 다양한 길들'이라... 내 아이 연애의 방법이 딱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라는 말로 들려요.
"당연히 그래요. 우리가 정말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미숙한 것이라 치부하거나 억누르지 않으면 좋겠어요. 또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느끼는 감정을 존중 받고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구요. 아, 때로는 눈치껏 모르는 척 신경 끄는 것도 정말 필요하답니다!"
- 연령대에 따라 그 내용은 좀 다를 것 같긴 한데요. 혹은 아이들이 이성교제를 할 때 부모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을까요?
"중고등 시기로 넘어갈수록 사실 부모가 나설 수 있는 영역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죠. 하지만 가능하면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아이들의 고민도 들어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 따라 달라서 모두 부모님과 이성교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억지로 이야기를 유도하기보다 언제든 원한다면 편견 없이 들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만 열어놔도 좋아요.
실제로 이야기 나눌 때도 편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도록 훈련을 해둬야 할 거예요. 왜냐하면 멘탈의 흔들림 없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 부모님이 자신없다면 무리하지 말고 아이와 이야기가 잘 통할 만한 주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정도만 해도 좋아요. 물론 아이들이 원한다면요."
- 선배들 가운데,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스스럼 없이 이성 친구의 이야기를 하거나, 고민 상담하는 내용을 들으면 좋기도 하고 부럽더라고요. 나도 저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봤는데요. 심쌤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에게 '우리 부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편견없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사랑 때문에 다양한 감정을 느껴본다는 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또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고 누려야만 하는 감정이기도 하구요.
우리가 어른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사랑을 미숙하다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쓸데없는 감정이라고만 치부할 자격은 없어요. "연애는 대학에 가서 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학에 가면 저절로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쉽게 답하지 말고 고민해 봐요. 정해진 답 말고 과정을 위한 답을 생각해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