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득(75. 청주시 사창동) 전 경상대 국문과 교수가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큰 절을 하다 울음을 토해내고 있다. 신 전 교수의 부친은 전쟁 때 군경에 의해 총살됐다.
박만순
"아이고~ 아버지…!"
신경득(75. 청주시 사창동) 전 경상대 국문과 교수가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곡소리를 토해냈다.
신 전 교수는 11일,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드러난 민간인 유해 앞에서 큰절을 올리던 그는 북받치는 설움을 눈물과 곡소리로 터뜨렸다.
신 전 교수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충북 청원군에서 후퇴하는 군인과 경찰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33살의 젊은 이발사였던 그의 부친은 남로당 증평면 사건으로 체포돼 청주형무소에서 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군경은 전쟁이 발발하자 도장골로 끌고 가 불법 총살했다.
유해발굴이 진행 중인 보은 아곡리는 신 전 교수의 아버지가 희생된 곳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12일, 오전 10시께 청주경찰서(무덕관)와 청주형무소, 국민보도연맹 충북도지부사무실 등에 감금됐던 보도 연맹원 수십 명이 총살돼 암매장됐다.
정부 조직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8년 "전시였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갇힌 재소자들과 좌익전력이 있거나 인민군에 동조할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이에 대한 책임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가에 귀속된다"고 밝혔다.
신 전 교수의 부친이 묻힌 곳은 아니지만 발굴된 유해에서 같은 이유로 총살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다 영양실조로 야맹증(夜盲症)을 앓다 시력까지 잃은 지나온 삶도 떠올랐을 것이다. 신 전 교수는 베트남전쟁에 자원하기도 했지만 신원조회에 걸려 강제 귀국조치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