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범 노안위원장
신동준 edit@ilabor.org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
안재범 노안위원장은 갑을오토텍의 경험에도, 이후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고 했다. 현장에서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이어갈 때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다.
"제가 갑을오토텍 투쟁 이후로 노안 활동가로 부딪힌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에요. 첫째는 지역이나 현장에서 노동 안전보건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활동을 확장해나갈 힘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거죠. 지역이나 현장의 노안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라는 점이 제일 큰 고민이에요. 사고 대처, 산재 보상, 산보위(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명산관(명예산업안전감독관) 활동 강화, 각종 작업장 환경 조사 등 노동 안전보건 활동이 확장되어야 하는데, 산별에서는 노안 담당자나 예산이 부족해요. 물리적으로 힘든 거죠.
다행히 노안위원장으로서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노안 활동가를 조직해가고 있어서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지긴 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확장이 필요해요. 안전보건 교육이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지역과 현장의 동지들을 확실한 노안 담당자로 키워내는 일에 한계가 있어요. 노안 활동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작업장 위험을 줄여나갈 방향을 모색하기
안재범 노안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위험을 실제로 줄여 나가보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산재 은폐를 둘러싼 회사와 노조 간의 갈등은 안전보건 문제를 다루는 데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 악순환을 해결할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선 노안 문제를 지금과는 다르게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노안 문제를 달리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산업재해 등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노조가 생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죠. 위험물질의 경우 노안 사업을 통해 발암물질을 제거해나가면 사측은 발암물질 없는 작업장을 운영하는 회사라는 평판을, 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얻을 수 있죠. 그러므로 회사가 안전보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노조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봐요.
회사는 안전보건 문제가 일터에서 또는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있어요. 물론 산재 은폐라는 악순환의 문제가 있지만, 저는 오히려 꼬인 매듭을 풀고 나면 일이 쉬워진다고 생각해요. 작업장 내 위험 요소들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하나씩 하면, 회사도 아는 거죠. 노조가 안전보건에 대해 요구하는 것들이 회사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왜냐하면 산재를 은폐하려고 공상 처리하는 것도 회사엔 재정적 부담이거든요. 각종 산재로 인한 재정상의 손실이 큰 거죠. 회사도 처음부터 이걸 해결하려고 나서진 않아요. 예를 들어 근골격계 질환으로 직업병 신청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이를 악용해서 회사에 손해를 입히려고 드는 게 아닐까 우려하죠.
또 산재가 인정되어서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을 받게 되는 등 관리·감독이 심해지거나 과태료를 물게 되면, 경영에 차질을 빚을까 봐 걱정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안전 보건 조치를 사전에 제대로 해서 산재 발생을 줄여나가면, 처벌되거나 공상 처리하는 비용에 비해 작업장 개선에 드는 비용이 적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러면 이제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동자들과 협력해서 작업장의 위험들을 줄이려고 해요. 안전보건 조치를 시행하는 초기에는 회사의 부담이 크지만,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깨닫는 거죠. 산재 건수도 줄고, 협상 경험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위험성 평가,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산업안전 보건위원회 등 안전보건 활동 전반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산재를 둘러싸고 서로 갈등을 빚거나 산재가 은폐되어서 작업장 내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등의 악순환도 해결될 수 있다고 봐요."
중대재해에 맞서 작업 중지권을 요구하기 위한 노력
중대재해 대응과 관련해 안재범 노안위원장은 작업 중지권이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제도가 있더라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조는 '파업'을 중심으로 대응했어요. 그러나 사측의 강한 반발로 파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법 제도 개선을 이뤄내지 못한 채 손해배상과 처벌을 받게 되어 노조 활동이 오히려 위축되는 문제를 낳기도 했어요.
2017년에 고용노동부에서 중대재해 사망사고 지침서를 만들었지만, 지침서는 문서로만 있을 뿐 실제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현장은 거의 없어요. 사고 조사, 결과 보고, 이행 조치 등 전체 과정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기 힘든 상황이었죠.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만 하고 진상조사와 사후 조치가 끝나버리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함께 '당장 멈춰 상황실'을 만들었어요. 해당 지침서를 실제로 활용하려는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대응 설명서를 제대로 이행하라고 현장에서 투쟁하기 시작했죠."
남은 고민과 앞으로의 과제들
안재범 노안위원장은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노안 활동가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장성'이라고 강조했다. 법 제도를 작업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의 역량 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저는 중대재해 대응이나 안전보건 조치와 관련해서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등 국가기관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의 역량 부족도 솔직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봐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작업 중지권이 명시가 되었죠. 작업 중지권을 발동하기 위해서 시행령, 시행규칙 등 법 제도와 관련한 투쟁도 중요해요. 그렇지만 현장에서 법 제도에 명시된 작업 중지권을 실행할 수 있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요. 작업장 일상 속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있는 법 제도도 잘 안 지켜지고,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잖아요. 그러므로 법 제도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고 실효성 있게 발휘될 수 있으려면 현장에서의 역량을 증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나가야 해요.
중대재해 대응과 관련해서 경험 많은 활동가들이 부족해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왕좌왕하게 되죠. 이때 현장에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겁이 난다'는 거예요. 준비도 안 되어 있고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불안하고 두렵죠. 다른 하나는 투쟁 기간을 예측할 수 있는 파업과 달리, 작업중지는 투쟁 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워 힘들다는 반응이에요. 얼마나 지속할 지 모르니 작업 중지 해제를 둘러싸고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이 갈등 상황에 쉽게 빠질 수 있어요. 오히려 미조직 사업장은 고용노동부와 사업주가 주도하니까 노동자들 처지에서는 행정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되죠. 그러니까 더 마음 편하게 작업 중지를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들을 마주해보니 산안법 개정을 통해 작업 중지권이 제도화되었지만,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안재범 노안위원장은 현장의 경험을 나누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노안 활동에 결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현장성을 더 강화해나가자고 제안했다.
"앞으로 명산관과 산보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법 제도를 개선하고,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나 위험성 평가 등을 더욱 전문성 있게 할 수 있어야 해요. 이에 필요한 연구사업을 진행해나가야죠. 하지만 그와 함께 현장과의 밀착성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조사 사업에 필요한 시트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직접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히면서 구체적인 사안들에 결합하는 활동이 필요해요. 지역과 현장에서 교육을 통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같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함께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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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맞서 작업 중지권 요구한, 이 남자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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