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52〉 한자 용(龍), 해일(日) 갑골, 용(龍) 갑골과 금문, 위상(上) 갑골과 육서통, 운(云←구름운(雲)의 본자) 갑골. 중국과 암사동 신석기인은 파란 하늘(경계) 넘어 공간을 거대한 물그릇으로 여겼다. 거기서 천문을 통해 구름이 나오고, 그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본 것이다.
김찬곤
〈사진151〉이 x축에서 본, 그러니까 사람이 땅에 서서 고개를 쳐들고 본 천문과 용이라면 〈사진152〉 용(龍) 갑골과 금문은 y축(옆)에서 본 천문과 용이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갑골과 금문에서는 천문(天門)을 〈사진151〉처럼 둥그렇게 그리지 않고, 반드시 y축에서 본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x축에서 본 천문(동그란 천문)은 육서통에 이르러서야 볼 수 있다. 중국 고대인들은 왜 천문을 이렇게 그렸을까. 그것은 해(日)와 관계가 깊다.
중국 고대인들은 해(日)를 동그랗게 그리지 않고 네모 속에 짧은 가로획을 그었다(〈사진152〉 참조). 이렇게 한 까닭은 거북 배딱지에 송곳으로 글자를 새길 때 동그라미를 새기기 힘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해(日)와 달(月)과 천문(天門)을 구별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셋 다 모양이 둥근데도 해는 네모지게, 달은 그믐달이나 초승달 모양으로 그렸다. 그리고 천문은 y축에서 본 것으로만 그린 것이다. 세계적인 한문학자 시라카와 시즈카는 y축에서 본 천문을 '꽃받침'으로 본다. 이에 대해서는 신석기 세계관과 관련하여 사라카와 시즈카의 한자학을 다룰 때 아주 자세히 다룰 것이다.
용(龍)과 구름(云)은 위상(二)에서 비롯한 글자
한중일 한문학계에서는 용(龍) 갑골과 금문에서 아래쪽 152-② '구름'은 읽어내고 있으나 위쪽 ①번 천문, 물그릇, 하늘 속 물(水)은 아직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보통 이 부분을 용 '뿔'로 보는 듯싶다. 이렇게 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동한시대(25-220) 허신의 《설문해자》(121)에서 그 내력을 찾을 수 있다.
허신은 위상(二)과 아래하(二가 뒤집어진 꼴)를 상형글자로 보지 않고 지사문자로 본다. 흔히 지사문자를 눈으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생각이나 뜻을 점이나 선으로 그린 기호(symbol) 글자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중국 신석기인에게 위상과 아래하 글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추상적인 것을 나타내는 기호였을까. 그건 아니었다. 그들은 파란 하늘 너머에 커다란 물그릇이 있다고 봤고, 그 그릇에 물(水)이 차 있고, 그 물이 천문(天門)을 통해 시시때때로 구름이 되어 온 세상을 덮었다가 비가 되어 내리는 것으로 여겼다. 근대의 관점으로 보면 이는 지극히 추상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신석기인에게 이러한 생각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언제나 생생한 실제이고 구상이었다.
더구나 중국 신석기인들은 이 세상을 위상과 아래하 단 두 글자로 표현했다. 어쩌면 이 두 글자는 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생겨난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 또 이 두 글자를 합쳐, 그러니까 위상 아래에 아래하를 붙여 한 글자로 표현한 금문도 있다. 한자학계에서는 이 글자를 상(二) 자로 보고 있다.
용(龍)과 구름(云) 또한 위상(二)에서 비롯한 글자이다(〈사진152-③〉 참조). 하지만 허신은 위상과 아래하뿐만 아니라 이 두 글자에서 생겨난 여러 글자, 특히 중국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헤아릴 수 있는 글자(云天气雨霝示言音龍不否丕辛王帝)를 한일(一)부나 두이(二)부 아니면 다른 여타 부수에 넣어 버렸고, 그 뒤 중국의 신석기 세계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흐릿해지고 만다. 무엇보다도 허신이 주역의 세계관으로 중국 한자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국 한자에 깃들어 있는 신석기 세계관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만다. 한마디로 허신은 신석기 세계관을 주역으로 전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일단 전도가 일어나면 기원(신석기 세계관)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서는 '빗살무늬토기의 비밀' 연재글 말미에서 아주 자세히 밝힐 것이다. (다음호에 이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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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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