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윤성효
문형배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가 재판 받는 사람들이 아닌 시민들 앞에 섰다. 3월 7일 저녁 진주문고(대표 여태훈) 문화관 '여서재'에서 "문학 속 재판"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이다.
문 판사는 "왜 책을 많이 읽었느냐"에 대해서부터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 '무지', '무경험', '무소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문 판사는 "서울에 대학을 가니까 사투리가 부끄러웠다. 버스번호를 물어봐야 하는데, 사투리 때문에 부끄러워 묻지 못해 다른 방향으로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투리는 안 쓰면 되지만, 무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경험보다 귀중한 자산은 없다"고 한 그는 사법시험 합격 뒤 군대 때 법무관이 아닌 정훈장교를 지내면서 겪었던 좌절감, 그리고 1986년 사법시험 치고 나서 구로공단 '진흥전자'에서 한 달 반 동안 나사를 조이는 일을 했던 경험을 털어 놓으며 경험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과거 자신이 했던 판결을 사례로 든 그는 "판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권한이 많다고 하지만, 판사 치고 그것이 권한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며 "유죄인지 무죄인지, 집으로 보내야 할지 교도소로 보내야 할지 헷갈리는 사건들이 많다. 그런데 사건은 대부분 옛날에 누군가 했던 일이 되풀이 되는 게 많다. 책을 읽다보면 판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재판 장면을 문학 속에 배치한 작가는?
문형배 판사는 소설 <레 미제라블>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부활>, <베니스의 상인>을 사례로 들며 '문학 속 재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재판 장면을 문학 속에 배치한 작가로는 토스토예프스키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은 죄로 기소되었고, 자수했다는 점과 다른 정상이 참작되어 징역 8년을 선고 받았다.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형법(2010년 4월 개정 전)은 강도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살인 또는 무기징역형에 처하게 되어 있고, 자수하여 형을 감경할 때는 무기징역형일 경우 7년 이상 선고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결국 대한민국에서 재판을 받았더라도 징역 8년 선고가 가능하였는데, 소설을 읽어 본 독자로서 징역 8년이 적정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토스토예프스키의 양형 감각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죄를 지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은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긴가 민가 할 때는 풀어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오래도록 터득한 법치다"며 "누구는 저런 사람을 풀어주느랴고 하지만, 본인이 당사자가 되면 그런 말을 못할 것이다. 법은 원래 그렇게 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문명사회가 지금까지 만든 이치다"고 말했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이야기도 했다. 문 판사는 "인류가 오랜 경험을 해보니,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다. 어떤 분이 아침에 경찰관이 와서 경찰서로 가자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조리있게 말을 못한다"고 했다.
이어 "자기가 판단의 주체가 될 때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다. 그것은 보완해 주는 제도가 변호인이다. 문제가 많지만 권리로서 있어야 한다. 사선이 안 되면 국선을 붙여 주어야 한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변호사 선입했다고 해서 지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