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깡통전세 우려 키우는 방송 보도(2/10~11)
민주언론시민연합
최근 '역전세난' 또는 '깡통 전세' 같은 단어가 언론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역전세난'은 부동산 물량이 없어 못 파는 '전세난'과 반대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깡통전세'는 전세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전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 전세 매물이 이른바 '빈 깡통'이 됨을 일컫는 말입니다. 둘 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져서 큰일 났다고 비판할 때 주로 나오는 표현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언론은 부동산 가격이 뛴다고 걱정하는 모습입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을 때도 '과연 뛰는 집값 잡을 수 있겠나'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역전세난', '깡통 전세'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효과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언론은 '9·13 부동산 대책'을 왜 '효과'로 칭하지 않는 것일까요? 언론은 부동산과 관련해 그저 '안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미지만 주려는 것이 아닐까요? 부동산에 대한 언론들의 책임감 없는 보도 행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역전세난·깡통전세 우려에 불붙이는 언론들
역전세난이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시발점은 각종 부동산 통계 조사를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있습니다. 한국감정원은 매월 또는 매주(월간은 익월 1일자, 주간은 매주 금요일 발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발표합니다. 이 통계가 발표되고 나면 여기저기서 집값이 하락세라거나 '몇 주 연속 하락', '사상 최초 하락'이라는 보도를 쏟아냅니다.
주간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가 발표되는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8일, 이 통계가 나오자 온라인 경제지들은 통계 수치에 '최근 15주 연속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온라인 경제지에서 떠들어댄 이틀 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에서도 본격적으로 전세 가격을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JTBC와 TV조선·채널A가 10일 역전세난 우려를 보도하고 뒤이어 11일엔 KBS·SBS와 TV조선·채널A·MBN·YTN에서 이를 다뤘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깡통 전세의 예시로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찾았습니다. 이 두 자치구는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가격 하락을 이끄는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또한 기존 시세가 높았던 만큼 가격 낙폭의 차이도 커서 '몇억씩 가격이 떨어졌다'는 예시를 찾기에 수월한 곳입니다. '역전세난' 우려에 불붙이기 좋은 사례인 것입니다.
채널A는 "돌려줄 전세금 없어서…깡통전세 비상"(2/10 김남준 기자)에서 서울 송파구를 찾아갔습니다. 기자는 송파구에 위치한 9천 채 넘는 대단지 아파트를 두고 "대규모 전세물량이 동시에 풀리면서 전세가격도 시세보다 2~3억 정도 대폭 하락했습니다"라며 "이 아파트 영향으로 주변 지역 전세 가격까지 떨어지다 보니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할까봐 세입자들은 걱정이 큽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실제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최근 15주 연속 떨어졌는데 올해 서울에서만 예정된 아파트 공급량은 4만 채로 2008년 이후 최대치입니다. 전세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라며 부동산 시장 악화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TV조선은 "역전세난 우려에 금융당국 실태조사 나서"(2/10 김지아 기자)에서 지난해 9월만 해도 전셋값이 8억 원대였던 송파구의 아파트를 예로 들어 "3개월 만에 2억 원 넘게 뚝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JTBC 또한 "서울 전셋값 15주째 하락…'역전세난' 오나"(2/10 전다빈 기자)에서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평균 전셋값은 2년 새 700만 원,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의 평균 전셋값은 2년 새 2500만 원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다음 날 KBS "서울도 역전세난…집주인‧세입자 '발 동동'"(2/11 신선민 기자), TV조선 "강남 4구 전셋값 하락…'역전세난 공포'"(2/11 임유진 기자) 기사 모두 송파구 사례를 다뤘습니다. 몇억, 몇천이 떨어졌는지는 방송사마다 다 달랐지만, 인터뷰 사례로 송파·강남을 다룬다는 사실은 같았습니다.
언론은 일부러 송파에 갔다
전국적으로 전셋값이 하락세인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연합뉴스 "'내줄돈 없다' 심각해진 역전세난…전셋값 2년 전 이하 지역 속출"(2/11 서미숙 기자)에서는 자사가 한국감정원의 월간 주택가격 통계를 분석해 본 결과, "올해 1월말 기준 전국 17개 광역 시·도의 절반이 넘는 총 11개 지역의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평균 2년 계약임을 고려)보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습니다.
보도에서는 이 하락세가 지방이 이끈 것이라 분석했습니다. "전국 평균 아파트 전셋값이 2년 전보다 -2.67% 하락한 가운데 울산광역시의 전셋값이 -13.63%로 가장 많이 떨어졌"고 "경상남도 역시 2년 전 대비 전셋값이 -11.29% 내려 전국에서 두번째로 하락폭이 컸"다는 겁니다.
울산에 대해서는 "조선경기 위축 등으로 전세 수요가 감소한 반면, 경남 일대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전셋값 하락폭이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고, "조선업체가 몰려 있는 거제시는 2년 전 대비 전셋값이 무려 -34.98% 하락해 전국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고 전했습니다. 연합뉴스는 대체로 지역 경기 침체와 아파트 공급량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죠.
그러나 서울은 아직 2년 전 대비 아파트 전셋값이 1.78% 높습니다. 물론 송파·강남을 포함한 강남 4구의 전셋값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락률이 –0.82%정도라, 전국 평균인 –2.67%에 비하면 아직까지 큰 수준은 아닙니다. 물론 이들은 시세가 워낙 높아 하락세가 가팔라지면 이에 문제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설명 없이 몇억 씩 가격이 오르내리는 송파에 찾아가 마치 전국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이고, 전부 깡통 전세가 될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적절한 보도 태도일까요?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SBS는 이 점을 짚었습니다. SBS는 "'역전세난'?…'거품 전셋값' 보증금 찾으려면"(2/11 손형안 기자)에서 지방의 경우 역전세난이 우려된다면서도 "반면 서울 전셋값은 2년 전보다 아직은 1.78% 높은 상황이고 아파트 공급이 많은 서초와 송파구 정도가 조금 하락한 수준입니다"라며 "지방의 경우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서울의 경우 일부 언론이 강남 고가아파트를 예로 들면서 '역전세난'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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