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맥나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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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대화에는 베트남전 당시의 당사자들이 출동했다. 양국 공히 13명씩 나왔다. 미국팀은 맥나마라 전 장관이 이끌고, 베트남팀은 전쟁 당시 외무차관이었던 응우옌 고 탁이 이끌었다.
이 대화는 양국 정부의 위임을 받은 공식 회담은 아니었다. 그러나 2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1995년 국교를 체결한 두 나라가 수교 2년 만에 벌이는, 베트남전을 결산하고 앙금을 터는 대화였다. 이런 모임을 메트로폴에서 진행했으니, 호텔 입장에서는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 26명은 베트남전이라는 비극을 사전에 막을 수 없었는지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서운했던 문제에 대한 발언도 거침없이 나왔다. 일례로, 베트남이 독립을 목표로 프랑스와 전쟁할 당시인 1945년에 호치민(호찌민) 주석의 우호관계 요청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거절한 것에 대해 베트남 측이 서운함을 표시하는 발언도 있었다. 그때 우리를 도와줬더라면 싸울 일이 있었겠느냐는 식의 발언이었다.
하노이 대화를 정리한 히가시 다이사쿠 조치대학 교수의 <적과의 대화>에 그 발언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은 번역가 서각수의 손으로 한국어판으로도 나와 있다. 베트남전 당시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이었던 쩐꽝꼬의 입에서 나온 발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처음부터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었건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대목이다.
"최초의 '놓쳐버린 기회'는 1945년부터 1946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만약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9월에 호치민 주석이 보낸 편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만들려는 프랑스에 반대했더라면, 베트남의 독립은 미국·프랑스와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달성되었을 것입니다."
다 지난 얘기 뭐하러 하나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대화가 그간의 앙금을 털어버리는 데 도움이 됐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1960년에 북베트남 지원 하에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전위부대)과 남베트남 정부군의 싸움으로 시작된 베트남전쟁은, 미국이 통킹만 사건(1964. 8. 4.)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북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하노이의 외항인 통킹만을 순찰하던 미국 구축함 매독스호 및 터너 조이호가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구실로 미국은 북베트남을 폭격하면서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했다.
미국의 전면 개입 명분이 된 통킹만 사건도 하노이 대화의 의제가 됐다. 허심탄회한 대화 끝에 맥나마라는 '북베트남이 공해상에서 공격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964년 당시에는 진실을 전혀 몰랐다는 식으로 맥나마라는 말했다.
<적과의 대화>에 따르면, 그는 "베트남 측의 증언을 역사적 사실로서 존중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일선 미국 장교들이 허위 보고를 했고 미국 정부는 전혀 몰랐으니 양해해달라는 식으로 문제를 마무리한 것이다.
'적과의 대화'에서 '친구와의 대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