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임신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다 보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임신을 행복으로 과대 포장하는 사회에 속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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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무지했다. 임신, 출산, 육아를 직접 내 몸으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임산부가 왜 힘든지, 어떤 신체 변화를 경험하는지,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엄마들을 왜 배려해줘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일상에서 임산부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교육 과정에서도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TV나 영화에서 접하는 임산부는 그저 헛구역질 몇 번 하면서 임신 사실에 당황하거나 감격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만삭 임신부의 이미지도 불러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띤 평화로운 이미지가 전부였다.
현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임신 초기, 아무런 신체적 변화가 없어서 임산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그 시기가 가장 힘들고 중요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임신 초기 호르몬의 엄청난 위력에 놀랐다. 가만히 있어도 며칠 철야작업을 한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서 있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수시로 피곤이 몰려와 괴로웠다. 몸은 천근만근에 시도 때도 없이 졸리고 울렁거리니 어디든 눕고만 싶었다.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이었다.
임신 중기에는 몸이 적응했는지 조금 살만했다가 만삭 때는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불균형한 몸을 이끌고 다니느라 수시로 다리에 쥐가 났고, 아이가 커지면서 내 장기들을 압박하여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일상이었다. 급격한 신체변화는 정신에도 영향을 주어 불면증에 시달렸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10달 내내 입덧에 시달리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언니는 수시로 병원에 누워 영양주사를 맞아야 했고, 울면서 죽고 싶다고 울부짖곤 했다. 임신한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경험해서 아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고통이었다.
임신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다 보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임신을 행복으로 과대 포장하는 사회에 속은 기분이었다. 온 인류 역사 내내 수많은 여성들의 신체에서 이어져 온 임신인데, 어쩜 이렇게까지 대중적으로 현실적인 정보 전달이 안 되고 단편적인 이미지만 전해져 왔는지 황당했다. 여성들은 공적으로 말할 기회가 적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침묵하며 그 시기를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슬픔이 몰려오기도 했다.
약자가 민망하지 않은 사회
무지가 혐오를 만든다. 임산부들의 신체·정신적 고통을 남녀노소 누구나 배워서 알고 있어야 한다. 임산부의 고통에 대해 공감할 수 없는데 무조건 자리를 비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효과도 없고 "내가 더 힘들다"는 반감만 만든다.
그 반감의 결과가 임산부 배려석을 향한 혐오다. 임산부는 배려가 필요한 교통약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배려하지 않아 정책적으로 좌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도리어 성별 대결의 각축장이 됐고, 임산부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서로를 적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사랑과 관심이 넘쳐야 할 자리에 긴장감이 돈다.
부산의 지하철에는 핑크라이트 장치가 도입되어 시행 중이다. 비콘(무선발신기)을 소지한 임산부가 타면 큰 소리로 임산부가 탔음을 알리는 경보음이 울린다. 좌석을 더 화려한 핑크색으로 칠해서 구분하고, 더 큰 소리로 알리면서 약자가 스스로 약자임을 증명하여 배려를 받아야만 한다니 참 민망한 상황이다.
이 반복되는 혐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임산부 배려석을 없애거나 더 늘리는 것보다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 노력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여 타인의 고통을 학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임산부의 고통에 대해서, 아이들의 특성에 대해서 진심 어린 이해가 생긴다면 더 화려하게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며 양보를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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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 훑고, X자 낙인... 임산부 배려석에서 벌어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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