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방음벽을 탁본하는 최양준
지금여기에
최양준은 그곳에서 지옥을 경험했다. 지금 최양준이 마주하고 있는 5층의 509호가 그랬다. 그곳은 인간을 파괴하는 곳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가 아닌 포식자에 잡힌 짐승이었다.
"수사관이 그래요. '야 이 새끼야. 카펫이 왜 빨간 줄 알아? 너 같은 놈들이 들어오면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아서 두들겨 패서 흘린 피로 물든 거야. 전부 핏자국이야. 알아? 너 이렇게 안 되려면 사실대로 이야기 해라' 이렇게 협박을 해요.
그 때부터 군복으로 갈아입히고는 잠 안 재우고, 몽둥이로 때리고, 옷 다 벗겨놓고 성기와 엄지 손가락에 전기 고문하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아 물 고문하고. 그 검은 탁자가 고문 탁자더라고요. 거기 묶어 놓고 전화기 돌려서 전기 고문하고.
이불을 꿰매는 대바늘로 손톱을 쑤시는 고문을 당하다가 너무 괴로워서 몸부림을 쳤는데 수사관이 구둣발로 몸부림 치지 말라고 손을 밟아 왼손 검지가 부러졌어요. 지금도 이렇게 휘어져 있다니까."
천천히 5층의 방과 복도를 거닐던 그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수십 년이 지난 서울이 아닌 부산의 기억이었지만 여전히 생생했다. 지금도 저 문을 박차고 나오는 수사관들과 자신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고문은 죽음의 고통보다 더 무서웠다. 정말 무서운 건 고문을 받고 있을 때의 고통이 아니라 고문 이후에 찾아오는 또다른 낯선 질문이다. 그 질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또 다른 고문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간첩 안 했다고 하니까 오전 내내 전기고문이 이어졌어. 그래도 안 한 걸 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냐. 나를 고문하던 수사관이 점심시간이 돼서 나가면서 그러더라고. '너를 오늘 죽여버리지 않으면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다. 너 오늘 죽을 줄 알아' 하고는 나가는 거야."
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