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 지진 피해자들의 아픔을 다룬 소설 '설탕 두 스푼'을 쓴 지질학자 최범영 박사
김시연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 더 힘들어하실 분도 계실 것 같아 조심스러워요."
지난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소 물 주입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한 지질학자가 소설로 반론을 펼치고 나섰다. 경주·포항 지진 피해자들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다룬 재난 소설 <설탕 두 스푼>(종려나무)을 쓴 최범영(61)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20년 가까이 지진 발생 위험이 있는 활성단층을 파헤쳐온 지질학자 최범영 박사는 이미 시집과 장편소설을 3권씩 펴낸 시인이자 소설가다. 최 박사는 2015년 조선시대 역사지진을 다룬 <바람에도 흔들리는 땅>을 시작으로, 한국전쟁기 양민학살을 그린 <빨간 의자>(2017년)와 우리나라 지질학의 흐름을 짚은 <게스트하우스 아마릴리스>(2018년)에 이은 이번 작품에서 아직 생채기가 가시지 않은 경주·포항 지진 생존자 문제를 다뤘다.
<설탕 두 스푼>은 가까운 미래, 포항과 경주 일대에서 대형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 태풍이 연거푸 발생한 직후 경북 안강에 있는 제8병동에 모여든 재난 피해자들이 의료인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재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야기 뼈대는 프랑스 입양아 출신이면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으로 재난 현장에 파견된 정신과 의사를 둘러싼 휴먼 드라마지만, 중간중간 포항·경주 지진을 둘러싼 여러 과학적 논쟁들을 일반 독자들 눈높이에서 전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 학계에서도 뜨거운 관심거리인 '포항지진 지열발전 유발론'이 대표적이다.
소설이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최 박사 스스로 과학 이론과 실증적 연구에 바탕을 둔 '팩션'(사실을 뜻하는 '팩트'와 소설을 뜻하는 '픽션'을 결합한 말로, 사실에 근거한 소설을 뜻함)을 지향하는 탓에 이 작품도 과학·정치사회적 논쟁을 비껴가기 어렵다.
더구나 최 박사가 지금 몸담고 있는 정부출연 연구소도 문제가 된 지열발전소 건설에 참여한 여러 기관들 가운데 하나여서, 이해상충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최 박사가 논문이 아닌 '소설'이란 형태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세상에 공개한 건, 특정 연구소에 속한 연구원이기 이전에 지질학자로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개인적 소신 때문이었다.
체육관서 두 번째 겨울 보내는 포항 지진 피해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