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족의 페미니즘 이야기는 '미안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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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배우'를 꿈꾸는 배우다. 연극을 했고 독립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지만, 상업 영화에는 엇! 하면 지나갈 정도로 아주 가끔 등장하는 초단역 배우다. 내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임신과 출산을 지나는 동안 산더미 같은 빚을 남기고는 쫄딱 망해버렸다. 나이는 많은데 특별한 기술은 없고 배우의 꿈도 놓을 수 없던 남편은 저녁 여섯 시부터 새벽까지 시간제 일용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남편과 나는 공동 양육, 공동 살림, 공동 경제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남편이 차려준 아침을 먹고 일을 나가면, 남편은 아이를 돌보고 가사 노동을 했다. 오후에 내가 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제야 남편이 일하러 나가 새벽에 돌아왔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돌보고 재우고 나머지 가사 노동을 했다.
하루 중 유일하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새벽마다 우리는 두세 시간씩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날 남편이 우울한 표정으로 자신이 '경력단절남성'이라고 말했던 날이 기억난다. 아이와 함께 오디션을 보러 갈 수도, 감독들과 미팅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 역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일을 쉰 건 5개월뿐인데도 사람들이 '경력단절여성'이라고 부르는 데 지쳐 있었다. 그날 우리는 '경력 단절'이 아니라 육아를 통해 '경력을 보강하는 사람들'이라고 서로를 위로했고, 다음날 남편은 배우 프로필 특기란에 '육아'라고 적어 넣었다.
나는 남편이 꿈을 버리고 생계를 위해 뛰어들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없다. 남자이기에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그를 응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여유 있게 돈을 벌어오지 못함을 자책한다. "당신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거 볼 때마다 많이 미안해"라고 스치듯 던지는 남편의 말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의 무게를 느낀다.
모든 게 미안한 나
나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워킹맘이다. 출산 후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생계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이가 생후 5개월일 때였다. 출산 후 수면부족으로 면역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극심한 유방 통증과 39도의 고열에 시달렸다. 그리고 한포진이라는 병이 왔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에,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과 틈만 나면 쏟아지는 코피와 잊을 만하면 돋아나는 다래끼를 보면서, 임신과 출산 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나에게, 내 몸에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함도 잠시. 엄마는 아프면 안 됐다. 특히나 '일하는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아이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는 건 어디까지나 아이와 나의 문제였지만, 일은 달랐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어떻게든 일을 했다. 제때 해서 보내지 않으면 다음 일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돼 멈출 수가 없었다.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아이를 재우다 잠든 다음 날에는 몸은 개운했지만 마음은 죄책감으로 무거웠다. 허겁지겁 남편에게 아이의 아침밥을, 친정 부모님에게 아이 돌봄을 부탁하고 노트북을 챙겨 일하러 나갔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밥, 청소, 설거지까지 하고 일하러 나가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 딸 일하라고 예정에 없던 일정에도 부리나케 와준 친정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엄마랑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왜 자꾸 일하러 가는지 알 수 없다며 훌쩍이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 이 모두에게 미안해 하는 나에 대한 미안함까지. 헤어날 수 없는 미안함의 홍수에 빠져 종일을 허덕이곤 했다.
나와 남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런 미안함을 계속 가지고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살 수 없었다. 왜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미안한 걸까.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또래 엄마들과의 육아 공부 모임을 찾아갔다. 우리는 아이를 업거나 안고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더 좋은 엄마'가 아니라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남편과 함께 가사노동을 하며, 남편 가족 행사나 명절에 며느리로서 일하며, 계속 변하고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했다. 감정과 욕구를 알게 될수록 나를 이야기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과 부당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하는 차별과 남편이 겪는 사회적 편견이 보였다. 남편과 함께 바꿔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출산 이후 강남역은커녕 해가 지고 나면 집 밖에 나가지도 않으면서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게 누구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다. '맘충'과 노키즈존, 폭력과 폭언, 도처에 넘쳐나는 혐오들... 그리고 미투(Me Too)가 이어졌다.
스마트폰의 네모난 창을 통해 여성들의 말과 글을 읽으며 울고 공감했다. 페미니즘 논쟁의 흐름을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그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왜 페미니즘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으며 또 멈추면 안 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렇게 페미니즘을 다시 만났다.
결혼한 여자의 페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