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5.18 폄훼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사법고시를 거쳐 춘천지검 원주지청장을 지낸 검사 출신이다. ⓒ KBS뉴스
곽영신
"잘난 사람,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 권력자들일수록 타인의 고통과 불운에 대한 무관심 내지 둔감성이 유별나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경향신문> 칼럼)
"법과 의료, 종교, 경제, 사회, 문화단체의 수장들 중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전우용 역사학자, 페이스북)
"그들은 우리 기대를 저버리고 자본, 권력과 결탁해 제 배를 불리는 데만 힘썼다." (조영학 번역가, <서울신문> 칼럼)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한국 엘리트를 보면 한국 교육을 안다.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명문대를 나와 어려운 고시나 공채를 거쳐 사회를 좌우하는 위치에 오른 엘리트, 그들이 바로 한국 인재양성 시스템이 맺은 열매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 배만 불리고' '타인의 고통과 불운에 무관심하며' '존경할 수 없는' 엘리트를 길러낸 한국 교육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각 분야 엘리트들은 조직 특유의 생리와 문화에도 영향을 받지만, 그 전에 제도권 교육을 거치며 일찌감치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저서 <대한민국의 시험>(2017)에서 "한두 명이나 한두 분야가 아니라 온갖 분야에서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일어난다면 나라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며 "그 한 축에는 인재양성과 선발을 담당하는 교육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교육이라는 '썩은 나무'가 한국 엘리트라는 '상한 열매'를 맺고 있다는 얘기다.
"점수 1~2점에 죽고 사는 비루한 인간"
한국 교육은 대체 뭐가 잘못됐을까? 가장 큰 문제는 경쟁과 서열 중심의 입시교육에만 치중해 도덕성과 정의감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교육의 본래 역할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육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오로지 '좋은 대학'을 목표로 경쟁하는 '점수 기계'를 찍어내는 데 치우쳐 있다.
핀란드 등 '협력'을 강조하는 교육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우리 교실의 성적 경쟁은 유별나고 지독하다. 상위권 학생은 성공을 향한 욕망으로 '인정투쟁'에, 중하위권 학생은 낙오에 대한 공포 속에 '생존투쟁'에 뛰어들어 앞만 보고 달린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는 없다. 학창시절 내내 옆 친구와 점수, 등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만 했던 아이가 적절한 공감능력과 이타심을 갖추고 사회정의와 공공적 책임에 헌신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철학자 김상봉은 <학벌사회>(2004)에서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을 공동체의 복리와 정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성숙한 인간으로 기르지 못하고 그저 자기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점수 1~2점에 죽고 사는 비루한 인간들을 길러낼 뿐"이라며 '전인교육의 붕괴'를 한탄했다.
특히 상위권 학생일수록 경쟁자의 정체가 명확하고 대립관계 역시 분명하기 때문에 언제나 '경쟁자의 실패를 바라는 부도덕한 심리상태'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화하게 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처음으로 한국의 학벌문제를 깊이 분석한 이 책은 15년 전에 나왔지만, 피 튀기는 입시전쟁은 그동안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았다.
윗사람 말씀이 '정답', 나만의 생각은 오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