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9일 오후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추모관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조정훈
자칫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 황 전 총리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9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전격 방문했을 뿐 아니라 이 자리에서 아주 놀랄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기간 연장을 불허했던 내막에 관한 내용이었다.
황 전 총리는 이날 "대통령께서 어려움을 당하신 것을 보고 최대한 잘 도와드리자, 그렇게 했다"며 "(박영수 특검이 요구한) 수사기한 연장을 불허했다. 훨씬 큰 일들을 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특검 수사 기간 연장을 거부했던 이유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배박'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이 발언은, 그러나 또 다른 논란을 야기시켰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일 논평을 통해 "공안검사와 법무부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의 권한대행까지 수행한 사람이, 적폐청산을 원하는 국민들의 법 감정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 오직 박근혜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니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황 전 총리가 박근혜 국정농단의 공범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특검 수사시간 불허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는 건 스스로 권력 남용을 자인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방조 책임에도 자유롭지 못한 황 전 총리는 국민에게 석고대죄부터 해야 한다"고 강력 규탄했다.
소나기 피하려다 우박 맞은 꼴이다. 당시 특검은 70일이라는 짧은 수사 기간으로 인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최순실 재산, 이화여대와 삼성과의 연관성, SK와 롯데 등 재벌들의 뇌물죄 수사는 아예 손도 대지 못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농단 의혹과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도 밝혀내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수사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특검 연장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배경이다.
그러나 당시 황 전 총리는 장기간 수사로 특검 설치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고, 사회 갈등과 대선에 끼칠 악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특검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특검 연장 거부가 박 전 대통령을 돕기 위해서였다는 황 전 총리의 발언은 당시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의미로, 국민이 위임한 공적 권력을 사사로이 행사했다는 자기고백이나 마찬가지다.
황 전 총리의 정무 감각에 의문부호가 붙는 것 바로 그 때문이다. 발언의 진위 여부는 논외로 친다 해도, 자신의 발언이 초래할 정치적 파장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황 전 총리의 정무 능력은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배박'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소환한 일화가 외려 부메랑이 됐기 때문이다. 정무 감각이 결여된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이 정치·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황 전 총리 정무 능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