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지난 11월 2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르네상스 미술과 메디치 가문’을 주제로 강연했다.
홍석희
당대 피렌체의 역사·지리적 상황
피렌체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도시국가가 각축하던 이탈리아 5개 주요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피렌체가 유럽 문명에 르네상스라는 새 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이주헌 평론가는 특히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발원지가 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 이유는 피렌체가 고대 문화유산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점이다. 두 번째는 '상업의 부활'과 십자군 전쟁으로 피렌체가 유럽 전역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 평론가는 "지주 귀족은 돈이 힘이란 걸 느끼게 되면서 도시로 진출해 도시 귀족화하고, 도시에서는 부유한 상인이 재물을 쌓으며 힘과 권력을 얻게 됐다"며 "귀족 계급과 부유한 상인 계급의 상호 수렴이 일어나면서 시민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해방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상업이 활발해진 만큼 도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해방된 시골 농노들은 도망쳐 도시의 노동력으로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평론가는 "부유한 상인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며 상류사회가 등장했다"며 "교육 중시 풍토 속에서 그들은 진보적이고 지적인 패트런이 됐다"고 설명했다. 패트런은 미술용어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예술가를 보호한 애호자를 뜻한다.
르네상스가 꽃핀 토양, 자유와 돈
피렌체 시민들은 공화정에 대한 자부심과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는데 그것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활짝 꽃필 수 있는 중요한 토양이 됐다. 또한 중세 말 이탈리아는 유럽의 여타 지역보다 부유했다. 이 평론가는 "알프스 이북 귀족과 달리 이탈리아 귀족은 도시에서 살았고 상업과 금융에 뛰어들었다"며 "이탈리아는 해상무역이 발달해 상인들과 금융업자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금융혁명 덕분에 이탈리아는 당시 유럽의 금융을 독점했다. 실제로 상거래를 기록하는 복식부기 원리와 환어음, 신용장, 예금계좌 등이 이탈리아에서 출현했다.
13~14세기에 걸쳐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인 신용을 제공하는 사업이 출발한 곳은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였다. 그는 "1394년 설립되어 100년간 운영된 피렌체의 메디치 은행은 막대한 부의 축적을 이루며 메디치가가 정치와 문화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반이 됐다"며 "메디치 가문은 자본과 예술을 결합해 피렌체를 불후의 걸작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자본과 예술의 결합이 르네상스의 핵심적인 동력이었다.
메디치가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다
1397년 메디치 은행을 창업한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부의 성취에 집중했다. 이 평론가는 "당시 제비뽑기로 공화정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는데, 조반니는 벌금을 물고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치도 멀리하며 은밀하게 부를 쌓은 그는 자식들에게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처신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부유하지 않았던 집안의 경제력을 빠르게 성장시킨 조반니는 사망할 때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 중 하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