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제 심판 출신인 임은주 전 FC안양 단장이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 공청회'에서 체육지도자 여성할당제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김시연
"여성 지도자가 부족하다고? 여성할당제 도입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열고 체육지도자 가운데 30%를 여성으로 할당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체육계에 수십 년 몸담은 여성 체육인들조차 여성할당제가 체육계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놓고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꾼 건 여자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임은주 전 FC안양 단장이었다.
임은주 전 단장 "공정한 경쟁 안 되면 여성할당제가 답"
이날 방청석에서 공청회를 지켜보던 임 전 단장은 "10년 전에도 이런 토론을 했는데, 10년 뒤 후배들이 똑같은 토론을 할까 두렵다"고 입을 뗀 뒤, 지난 2005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AFC(아시아축구연맹) 심판위원이 된 뒤 AFC 회장에게 여성 심판 확대를 요구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AFC 심판위원 가운데 여성은 나 혼자였는데, 여성 심판과 감독관을 더 늘려달라고 했더니 (여성축구선수 가운데) 은퇴하고 심판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AFC 회장과 사무총장에게 '당신 딸들이 한 달에 한 번 매직(생리)에 걸리는 걸 아느냐' 묻고는, 섭씨 40도가 넘는 곳에서 경기할 때 생리 중인 여성 심판은 (대체인력이 없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선수들은 피임약을 먹고 뛰지만 여성 감독관이 없어 제대로 얘기도 못 한다고 했다. 46개 AFC 회원국에서 의무적으로 (여성 심판을) 3명 이상 교육받게 해달라고 요청한 게 10년 전인데, 지금 아시아는 유럽보다 많고 유능한 여성 심판위원과 감독관을 두고 있다. 누군가 시작하지 않고, 누군가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임 전 단장은 최근 여성 최초로 프로야구단(키움 히어로즈) 단장에 임명됐다 열흘 만에 물러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동안 남성 중심 스포츠계의 불문율을 수차례 깼다. 지난 1997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여자축구 국제심판이 된 것을 시작으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프로축구단 대표(강원 FC)와 단장(FC 안양)까지 맡았다.
지금 체육계 안팎에서도 미투(나도 고발한다)와 조재범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 성폭행 사건 여파로, 남성 중심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유승희 의원이 발의할 예정인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에는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단체가 두는 체육지도자의 30% 이상을 여성이 되도록 하는 '체육지도자 여성할당제'를 담았다.
이미 지난 2008년 체육계 성폭력 사태 직후에도 당시 남성 지도자가 90% 이상인 체육계의 남성 지배적 문화를 바꾸려고 '여성 지도자 할당제'가 대책으로 나왔지만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여성 지도자 비율 18%, 여성 선수 비율 23%에도 못 미쳐
2018년 현재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들 가운데 여성 선수는 약 23%를 차지하고 있지만, 체육지도자 1만9965명 가운데 여성 지도자는 3500명으로 18%에도 못 미치고 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각종 체육단체 임원 가운데 여성 비율은 이보다 낮은 1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대책에는 '체육지도자 여성할당제'가 아예 빠졌다.
지난 2008년에도 국회에서 여성할당제 도입을 주장했던 유승희 의원은 "당시 대한체육회는 여성지도자 인력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입을 거부했다"면서 "여성지도자 인력풀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할당제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의원은 "20년 전 2% 정도였던 기초의회 여성 의원 비율이 지금은 30% 가까이 됐다"면서 "20년 동안 당내에서 (여성 정치인 할당제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있었던 것처럼 여성 체육지도자 인력풀을 늘리기 위해서도 법안 통과 과정에 여성 체육인들의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