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밤콩쌀과 함께 밥을 지어서 먹고 있다
오창균
씨앗을 남기는 농사
전통적으로 내려온 유기농사를 계속 짓겠다고 해서 지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농촌지도소에서는 농약을 치라고 닦달했고, 토종종자가 아닌 개량종자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협수매도 받지 않았다. 국가권력의 폭력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수입 밀가루가 밥상을 점령하면서 토종 앉은뱅이 밀을 농협에서는 수매하지 않았다. 판로가 막히고 값싼 수입밀가루에 토종 밀은 점차 사라져갔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쌀은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대체 작물로 논에 수박을 심으라고 비닐하우스 시설을 짓는 큰돈을 국가에서 빌려줬다. 농촌을 빚더미의 늪에 빠지도록 유혹한 것도 국가권력이었다.
빚을 내지 않으려는 농민들은 토종 농산물을 생산했지만 농협에서는 수매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도 농약과 비료로 키워낸 크고 때깔 좋은 깨끗한 농산물에 밀렸고, 유기농으로 길러낸 토종농산물은 점차 사라져갔다.
토종종자가 사라진 농촌은 IMF 외환위기 때 국내 종자기업은 외국에 팔렸다. FTA 자유무역으로 농산물시장을 전면개방하면서 농업은 급격히 쇠락해갔다. 농민들은 외국의 종자회사에서 만든 일회용 씨앗으로 불리는 F1(filial generation, 1세대) 종자를 해마다 돈을 주고 사야 한다. 품질도 좋지 않은 외국산 씨앗은 부르는 것이 값으로, 몇 배씩 폭리를 취하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직접 구매하는 농민들도 있다.
"농민들이 씨앗 없이 어찌 살겠어요? 지남철처럼 붙어살아야 해요."
"토종은 받아서 쓸 수 있어서 매년 사지 않아도 돼 좋아요."
끊어질 듯하던 토종종자는 할머니의 할머니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왔다. 국가가 외면한 농업과 토종종자 되살리기는 전국여성농민회와 텃밭을 일구는 도시농부도 참여하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토종농산물은 할머니들의 텃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언니네텃밭' 협동조합과 토종을 지키려는 농민들은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고 있다. 토종을 지키는 농민에게는 소비자의 관심과 응원이 많이 필요하다.
씨앗, 할머니의 비밀 - 할머니가 차린 토종씨앗 밥상과 달큰한 삶의 이야기
김신효정 지음, 문준희 사진,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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