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경영 정상화를 바라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는 대한항공 조종사들.
참여연대
국민연금이 사회적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이 취할 태도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는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를 염두에 둔 주주권 행사는 기금운용의 최종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물론 위원회의 심도 있는 논의 역시 필요하다.
사실 이번 대한항공 건을 기회로 문제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이제 국민연금은 "순수한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권리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이는 상법, 자본시장법 상 순수 재무 투자자로서 10%가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조항으로 인정되었던 특례들을 더 이상 받기는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대한항공 이사진의 행위는 국내법 기준으로도 위법 사항이고, 이 자체로 처벌받아야 할 사항이다. 그럼에도 대한항공 및 한진칼과 같은 상황에 대해서 현재 마련되어 있는 실정법에 의한 처벌을 건너뛰어 곧바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안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기존의 법적 체계나 규제, 이를 뒷받침하는 지침 및 규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법 사항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실적으로 수많은 '갑'들이 존재하고 사회적 피해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소위 대마불사의 원칙을 믿으며 여전히 법을 무시하는 집단 혹은 개인에 대한 법적 조치들이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 국민연금이 보유하는 주식 지분의 힘으로 통제한다던가, 기금의 활용을 통한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투자를 임의적으로 수행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기금은 그 기금의 목적인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노후 준비 자산으로서의 안전성을 최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구현'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직접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진다면, 앞으로 국민연금은 수많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사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정의 구현' 수단으로 국민연금, 과연?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연금은 어떤 사항들에 대해 사후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을 촉구하기 보다는 사전적으로 특정 행동에 대한 지침들이 마련되어 주주권의 행사가 정당하고 객관적임을 보여야 한다.
국민연금에서는 가입자인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에 따른 주주권 행사 로드맵으로 마련되고 있다. 그리고 필요 안건에 따른 행동 준칙이 준비되고 있다.
이미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과 관련하여 공단은 최초 사건발생 직후 주주서한을 발송하였고, 기금운용위원회 요구에 따라 경영진 면담 등을 요청하는 공개서한 발송한 바 있다. 이후 법원 등의 판단에 따라 법의 처벌이 있거나 명확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국민연금 역시 이와 병행한 규정에 따른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데 따른 구체적인 로드맵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대한항공과 같은 국민연금의 주주권을 크게 훼손한 기업을 방치할 수는 없다. 물론 주주권의 행사라는 직접적 행동을 취하기도 어렵다.
이번 문제를 수탁자전문위원회에 넘기도록 하자는 안건과 국민연금이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의 범위를 논의하자는 안건으로 제안된 사항으로 한정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각 위원회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더 나아가 주주권 행사의 일정 기준과 지침을 논의하여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주주권을 포함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투자 대상에 대한 재산권 침해 소지와 기준의 자의성 등에 대한 비판이 있는 상황에서 주주권 행사에 보다 엄밀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위한 선결조건
둘째, 국민연금기금이 투자대상 기업의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프로세스와 대응방안에 대한 기반이 아직까지는 보강되어야 할 부문이 있다. 실제로 주주권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현실적인 내용보다는 주주권 집행의 가부를 논의하는 내용이 주가 되어 왔다.
그나마 의결권 행사는 기금운용본부의 의결권 행사 지침에 의해 집행될 수 있으나, 지배구조에 가장 강력한 개입방법인 소송이나 소수주주권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다른 주주들이 소송이나 주주권행사를 할 경우 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배구조에 대한 주주로서의 영향력이 행사될 경우, 이에 대한 영향은 다른 일반 주주들의 주주권과는 크게 다를 것이니 만큼, 다른 일반주주들과 국민연금기금간의 관계도 논의되고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