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며느라기> 6_4.제사편 중 한 컷 (작가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며느라기
지난 추석, 나는 시가에 가지 않았다. 반란의 시작은 부부 싸움이었으나, 오래 전부터 하기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혼한 지 12년, 추석과 설날 전날에는 같은 지역에 사는 시어머니, 형님, 나 셋이 모여 항상 전을 부치고 음식을 준비했다. 간혹 시부모님이 나서서 '이번 명절에는 쉬라'는 집들도 있다는데, 나의 시부모님은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 안식년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들만 시가로 갔다.
눈치 싸움
그동안 여러 번의 명절을 겪을 때마다 형님과 나, 어머님이 서로 장 보는 일을 미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눈치 싸움을 벌였다. 여러 신경전이 오가면서 서로 감정이 상하는 건 기본이었다.
게다가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명절 전날에는 최대한 늦게 시가에 가려고 눈치를 봤다. 시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덕에 저녁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도리어 가깝기 때문에 명절 당일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새벽 일찍 시가에 가 오전 6시부터 명절 음식을 차려야 했다. 형님은 차례를 지내기 10분 전에 도착하시곤 했다.
이 모든 것이 명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신경전이었다. 어머님, 형님, 나, 이 집안의 여자들 누구 하나 달갑게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매번 명절 음식을 차려야 하고, 차례를 지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님, 즉 남편의 형수님은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리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 남편의 형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나는 '형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존댓말을 써야 했고, 형님은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나'란 존재는 없어졌다. 시가에서 나는 전통의 역할을 부여받은 둘째 며느리일 뿐이었다. 모두에게 당연한 이 상황이 나는 내내 불편했다.
누군가는 이틀만 참으면 된다고 했고, 아이들 생각해서 그냥 참으라고도 했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야 후손들이 잘되는 것이라고 또 참으라고 했다. 이 조언들의 기본 사상은 엄마는 희생하고 참는 존재, 그래야 아이들이 잘되고, 가정이 평화롭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궁금했다. 아이와 모성을 볼모로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추석 때 시가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주변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대단하다', '용기 있다'가 첫 번째였고,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냐', '그 이후가 궁금하다'는 질문이 두 번째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음이 불편했다. 추석 이후 어머님과 꽤 오랜 시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워킹맘인 나는 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 하원 후부터 내가 회사에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님이 아이들을 봐주시는데, 어머님은 추석 이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지도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