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서 일어난 서른 다섯의 나는, 십 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위대한 쇼를 보여주었던 서른 다섯 언저리의 대표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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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대표와 나 사이에는 십 년의 간격이 놓여 있었다. 십 년의 간격이라...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의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이 올 해로 십 년이 되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서 지하철 5호선을 탄다. 광화문역에서 내린다. 회사에 도착하면 자리에 앉아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또 가끔은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고 밖이 어둑해지면 퇴근해서 집으로 향한다. 아주 가끔은 저녁에 술을 마신다.
평범한 직장생활이다. 새로운 자극은 많지 않고, 겉보기에는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일이 주어진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또 무덤덤한 마음으로 다음의 일을 한다. 평범하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지금 내 안에 얼마나 무엇이 쌓여 있는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조금이라도 진보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을 일깨워줄 변곡점이 없다.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직장인의 나는 십 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십년 전의 나는 말주변이 없고, 말주변이 없어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글로 정리하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의 앞에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자리를 주도하지 않았다. 내향적이던 신입사원 시절의 모습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를 하다가 종종 자리에서 일어난다. 직장생활의 회의 시간은 생각보다 축축하고 무겁다. 창문이 없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시간이 갈 수록 머리를 쥐어 뜯으며 괴로워한다. 뭔가 머리 속에 든 것은 많은데 하나의 줄기로 엮어지지 않을 때,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문제조차 파악되지 않을 때, 어느 정도 결론이 났는데 이걸 보고서로 어떻게 담아야 할지 난감할 때, 사람들은 한숨을 쉬고 괴로워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칠판 가득 도형과 글씨를 채워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는다. 내가 칠판에 써내려가는 것들이 옳은지 정답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회의실에 모인 우리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겁고 어둡다. 다만 누군가 이야기의 물꼬를 다시 트려고 일어섰다는 것.
자리에서 일어난 서른 다섯의 나는, 십 년 전 클라이언트에게 위대한 쇼를 보여주었던 서른 다섯 언저리의 대표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었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들의 고민을 해결하려 애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 모습을 경험하는 건 정말 낯설었다. 이게 끝이 아닐 것임을 안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었다.
내가 먹는 것은 벌써부터 나였다
내가 믿어온 것도 나였고
내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나였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안데스 소금호수
바이칼 마른 풀로 된 섬
샹그리라를 에돌아 가는 차마고도도 나다
먼 곳에 내가 더 많다
그때 힘이 없어
용서를 빌지 못한 그 사람도 아직 나였다
그때 용기가 없어
고백하지 못한 그 사람도 여전히 나였다
돌에 새기지 못해 잊어버린
그 많은 은혜도 다 나였다
아직도
내가 낯설어 하는 내가 더 있다
- 이문재 시인 '밖에 더 많다' 중에서(문학동네시인선 052 <지금 여기가 맨 앞> 수록작)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지음,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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