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믿어야겠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의에 차 있었다. 말도 안 맞는 저 한마디를 굳건하게 내뱉은 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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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믿어야겠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의에 차 있었다. 큰 결심을 한 듯 나를 불러 말씀했다. 하느님을 믿겠다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믿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닌 믿어야겠다니. 말도 안 맞는 저 한마디를 굳건하게 내뱉은 엄마는 과연 무슨 생각이셨을까.
"엄마, 갑자기 무슨 소리야?"
"교회를 다니면 제사를 안 지내도 된다 그러더라."
또다시 명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는 일 년에 제사를 8번 지냈다. 장남과 결혼했고, 시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셔서 시집올 때 첫인사를 제사상으로 드렸다. 그 제사상을 일 년에 8번 차려야 하는 줄 알았다면 엄마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몇 년 후 시어머니인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고조모와 고조부 제사, 거기다가 설과 추석까지. 합쳐서 총 8번. 30년을 넘게 엄마가 차려왔을 제사상을 생각하면 그 말 한마디가 납득이 되고도 남았다.
"엄마, 그 말은 어디서 들었어?"
"앞 동에 아줌마는 교회를 다니는데 제사를 아예 안 지낸단다."
"엄마. 엄마가 혼자 교회 다닌다고 제사를 안 지낼 수 있는 게 아니야. 집안이 다 교회를 다녀야 하는 거야."
"그러냐? 안 되는 거냐?"
엄마는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일 년에 8번을 이혼했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혼자 힘들어 죽겠다며 한탄을 쏟아냈고, 아빠는 제사상 한번 차리는 거 가지고 유난을 떤다며 당연히 큰며느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춘기 때는 언성을 높여 싸우는 부모님을 보고 차라리 이혼을 하라며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나는 당연히 엄마 편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해하겠는데, 증조와 고조가 붙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실 너무 까마득했다. '증조, 고조'라는 단어는 조선 시대나 삼국 시대처럼 나에게는 그저 다 똑같은 머나먼 옛날이다. 가늠이 잘 안 된다. 조상님께는 죄송하지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그 옛날 분들의 제사 때문에 일 년에 여덟 번을 사네 죽네 해야 한다면 이건 뭔가 좀 아니지 않은가 싶었다. 엄마가 많이 안쓰러웠다.
엄마는 큰며느리였다. 그 위치에 충실하기 위해 매번 장을 보고,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탕을 끓여 가짓수에 맞게 제기에 올려 상을 차려내는 행위를 오랫동안 묵묵히 해왔다. 나도 일찍이 엄마 옆에서 그 일을 도우며 함께 해왔지만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전을 종류별로 부치는 일 하나만으로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고된 가사노동 뒤 돌아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친척들의 시선과 무심한 아빠의 말이었다. 엄마가 이혼을 외치는 게 당연했다.
엄마는 매번 제사상을 차리며 나에게 너는 절대로 장남에게 시집은 안 보낸다고, 엄마는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장남만 아니면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장남은 안 된다'는 엄마의 조건은 내 사랑에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나는 결국 장남에게 시집을 갔다. 나 또한 명절이 오면 시어머님을 도와 차례상을 차리고 제사도 지낸다. 딸은 이래저래 엄마를 닮나 보다.
하지만 남편은 나에게 그걸 당연한 일이라 절대 말하지 않는다. 내가 시어머님과 전을 부치고 있으면 많이 미안해하고, 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몸은 괜찮냐며 고맙다고 몇 번을 반복해 말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피로하지 않다. 제사가 끝난 후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을 외쳤지만 나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외치지 않는다.
명절과 제사 때마다 엄마에게 필요했던 건 큰며느리가 제사상을 준비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친척들의 마음과 그 수고를 알아주는 남편의 말 아니었을까. 엄마도 단순히 본인 힘든 게 싫어 이혼을 외쳤던 것은 아닐 것이다. 제사 후 아빠가 고생 많았다며 엄마의 수고와 며느리로서의 노고를 알아줬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아버지가 내미는 돈 봉투보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공감이 엄마에겐 필요했다.
길고 힘든 엄마의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