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축사회> 저자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
이희훈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생률은 마침내 1명 선이 무너졌다(0.96명, 대통령직속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작년 한 해만 급락한 게 아니라 1980년대에 2명 선이 무너진 이래 지속적으로 줄어든 결과다. 문제는 이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잘 나가는 듯 보이는 중국도 산아제한 정책의 후유증으로 곧 인구감소를 맞게 될 전망이다.
인구 감소는 수요(소득) 감소와 성장률 하락이라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여기에 출생률 감소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은 개인주의 풍조를 확산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고 자란 자녀들은 각종 스마트 기기나 자율주행차 같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혼자 생활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환경을 누린다. 사람들 간에 불통이 심화되며 각자의 행복만 추구하다가 급기야 공동체가 붕괴된다. 구체적인 결과물은 양극화 심화로 인한 연금, 보험 등 사회안전망과 교육 시스템의 붕괴로 나타난다.
홍 대표는 "사람들이 갑자기 '소확행'을 얘기하고 그런 시장이 뜨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과거처럼 큰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걸 다들 절감하니 '작은 호사'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축사회에서는 각종 자격증, 자영업은 물론이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급 과잉이 심각해진다. '공황'의 가능성에 대해 홍 대표는 말했다.
"이미 자영업과 조선 등 일부 산업들은 공황 수준이고, 여기에 자동차 분야도 곧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수축사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1929년 대공황 직전에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도 나라마다 관세를 올리며 보호무역으로 간 게 대공황을 심화시켰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 갈등이 판박이로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대공황은 인구가 팽창하고, 중국·한국 같은 미개척 시장이 많은 상황에서 찾아왔다.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도 초기 3년은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는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뉴딜 정책의 실패로 터진 것이 2차 세계대전이다. 물론 교과서에서는 독일 히틀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으로 2차 대전의 원인을 설명하겠지만."
홍 대표는 "늦어도 5년 이내에 수축사회가 본격화되고, 이런 현상이 5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이나 헬스케어, 바이오 등의 영역은 앞으로도 파이가 계속 커지면서 팽창사회의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산업들도 시간문제일 뿐 공급과잉에 빠질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드론, 태양광, 암호화폐, 건강보조제 같은 미래형 산업조차 이미 공급과잉이다."
민주주의보다는 빵... 대중영합주의 득세
그는 수축사회 진입의 대표적인 징후로 포퓰리즘(배타적 애국주의 포함)의 득세를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축사회가 지속되면서 민주주의나 자유보다는 빵이나 안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약간의 파이만 제공해주면 독재적인 정부라도 용인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 기반이 중산층 이하 소외된 백인 또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내륙 지방에 산재해있는 점에 그는 주목했다. 4차 산업혁명 등 수축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중하류층의 생존 심리가 트럼프 집권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터키, 브라질 등지의 포퓰리즘 득세에 대해서는 "수축사회에 진입하는 이 나라들의 교육 수준이 낮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공통점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80%대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은 트럼프 흉내를 내면서 막말을 일삼는데, 이런 주장이 조롱을 받으면서 지지층 확산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나올 정부는 보수에서 조금, 진보에서 조금씩 뽑아 쓰는 '핀셋 이데올로기'로 갈 공산이 크다. 좌파 정부는 복지를 강조하지만, 성장을 위해서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전 방위로 포퓰리즘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일자리가 남아도는 일본을 따라가자"는 담론에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일본에 일자리가 많아진 이유는 간단하다. 전후 베이비부머(1947~58년) 세대들이 70세를 넘기면서 대거 은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를 넘기기 위해 지금까지 432조 엔(약 4400조 원)의 돈을 찍어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84% 수준이다. 급하니까 풀었지만, 언젠가는 거둬들여야 할 돈이다. 우리나라에는 아베 정부의 이런 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식의 정책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물론, 일본이 아무리 허약해도 기본적으로 R&D가 강한 나라다. 한국, 중국이 수출을 많이 할수록 핵심부품을 대주는 일본도 돈을 왕창 버는 구조가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는 1955년부터 시작됐다. 2025년에는 이들이 70세를 넘겨 은퇴 대열에 들어서고,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취업에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일자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볼 수 있을까? 홍 대표의 생각은 비관적이다.
"첫째, 한국의 노인층이 일본보다 훨씬 가난하다. 사회복지는 취약하다. 노후가 보장 안 되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하려고 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노동시장이 훨씬 개방되어 있다. 150~200만 외국인들이 이미 청년층 일자리를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내보낼 수도 없다. 셋째, 일본은 민간 소비가 전체 경제의 55%에 달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정도의 내수 시장이 없다."
반대로,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이상적 모델로 삼는 것에도 비판적이다.
"북유럽과 베네룩스 3국 같은 유럽 국가들을 한국과 비교하면 안 된다. 팽창사회를 기준으로 한 모델인데 그 나라들에도 수축사회가 밀려들고 있다. 스웨덴의 자랑인 볼보가 중국으로 넘어간 현실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이정우씨는 네덜란드의 노사모델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는데, 네덜란드 모델은 대항해시대를 함께 헤쳐나간 선주와 선원들 간에 오랜 세월 쌓인 규약이 굳어져서 형성된 거다. 그런 역사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팽창사회에서는 통했지만 수축사회에서는 안 통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