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I '샘(1917)', '자전거 바퀴(1915)', '병걸이(1914)' 뒤샹의 대표적 레디메이드 작품들
김형순
뒤샹은 미술이란 심미적인 것을 벗어나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내가 선택해서 전시장에 갖다놓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는 '선택'이 바로 창조가 된다. 제3의 미술이라 할 만한 혁명적 개념이다. '레디메이드' 개념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는 오리지널에 대해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뒤샹은 1950년 구입한 '샘'에 가상예술가 머트씨('R.Mutt')라고 사인했다.
뒤샹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는 신개념미술에 대해 글을 남겼다. 한번 읽어보자.
"미술은 어원상 만들기를 의미한다. 뭔가 만든다는 건, 물감의 색을 고르고 팔레트에 짜고, 물감을 칠할 지점을 정하고 미술을 결국 모든 게 선택이다. 하지만 원한다면 물감이 아니라 기계로도 제작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남들이 만들어놓은 공산품 '레디메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이럴 듯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이고 선택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위 세 작품은 그런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벽걸이'는 요즘 싱크대에서 흔히 보는 가져다 거는 방식과 똑같다. '자전거바퀴'도 그렇다. 바퀴는 기계의 원류인 '베틀'과 함께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이게 없었다면 마차, 기관차, 자동차, 탱크 등이 나올 수 없다. 이동에서 대혁명이 온 것이다. 여기에 모터가 발명돼 산업혁명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뒤샹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1917년에 나온 '샘'이다. 이 작품은 남성용 변기로 여성의 성기(자궁)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왜 '샘(Fontaine)'인가? 그건 아마도 쿠르베가 그린 잉태의 샘을 상징하는 '세상의 기원'과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뒤샹은 이 작품을 자신의 레디메이드 버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서양미술사는 누드화의 발전사와 다름 아니다.
나의 이런 해석이 얼마나 객관성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관 간담회에 참석한 뒤상 전문가 '매슈 애프런'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지만 이 작품이 서양의 누드화전통의 뉴 버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수긍을 했다.
전쟁 속 작품보전을 위한 '아트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