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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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그런 여자도 아니고, 제 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없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첫 아이 낳고 첫 아이가 너무 외로울까 봐 둘째를 가진 것이 자연임신으로 쌍둥이가 되었고, 쌍둥이를 조산하면서 곧바로 넷째가 생겼지만 조산했던 경험으로 차마 생명을 지울 수 없어 넷째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넷째에 대한 주변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 저는 끝까지 타지에서 독박육아를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막둥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에 고열과 경기로 응급실을 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 아빠의 회사는 아무리 빨리 오더라도 자차로 4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생후 18일된 아이가 이를 딱딱 부딪쳐 가며 온몸을 비트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여섯 살 된 딸아이에게 돌쟁이 쌍둥이를 맡기고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각이 밤 11시가 넘었을 때여서, 이웃집 문을 두드려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던 상황이었죠. 또 남편은 근무 중이였고요. 응급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아픈 아이는 아픈 아이대로 집에 두고 온 아이는 두고 온 아이대로 걱정이 되어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시댁이나 친정 근처로 이사를 가야겠구나 결심했습니다.
막상 저희가 이사 가겠다고 하니까 시어머니는 일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오지 말라셨습니다. 친정 엄마도 마지못해 수락하셨지만, 그 일로 밤잠을 설쳤다며 몇 날 며칠을 하소연하셨죠. 직장을 옮기니
남편의 월급은 줄어들었고요. 아이들 나이가 어려서 맞벌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저희는 작년 2월 친정 근처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큰딸이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종일 일을 해야 했고 친정엄마와 저는 2교대로 병원과 집을 왔다갔다 했지요. 병원에 있는 큰 딸이 문제가 아니라 집에 있는 남자애 셋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딸을 혼자 두고 제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 집에 계시던 친정엄마가 병원으로 가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그 마이코 폐렴이 차례차례 둘째, 셋째, 넷째에게 모두 옮긴 것입니다. 이 아이들을 모두 입원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결국 병원에 통원 치료를 하면서 수액와 항생제를 맞았습니다. 오전에는 첫째, 오후엔 둘째, 다음날 오전엔 셋째, 오후엔 넷째. 12월까지 쭉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하다가 1월 초엔 첫째가 수두에 걸렸습니다. 수두가 다시 돕니다. 둘째, 셋째. 다행히 막둥이는 패스...
돈보다 돌봄이 더 필요한 다둥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