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으로만 보던 공간들이 눈앞에, 현실의 공간으로 성큼 완성되어간다. 이것을 바라보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황우섭
현장의 상황을 누군가 지켜보지 않는 한 작업자들은 해오던 대로 일을 했다. 하루에도 몇 개의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한쪽에서 타일을 붙이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기공사를 했다. 이 모든 공정을 누군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했다. 모든 공정마다 일솜씨가 좋은 분들만 모아서 작업을 진행하는 현장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결과물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오해 없기 바란다. 현장에서 애써주신 분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디나 하루의 인건비는 똑같고, 이 집은 그들에게 특별할 리 없는 수많은 현장 중 하나일 뿐이다. 얼른 마무리하고 정해진 날짜에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여기에 조금이라도 더 다르게 뭔가를 주문하는 건 작업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건 이들에게는 곧 시간이며, 시간은 곧 비용이었다. 게다가 손으로 하는 일이라 손끝의 솜씨에 따라 구현되는 결과물은 다 달랐다. 연세 지긋한 작업자분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 대부분이어서, 단지 기호의 문제로 치부되곤 했다.
나는 집 외벽을 이루는 와편(기와조각)의 왼쪽과 오른쪽 끝이 위아래 줄과 일직선으로 딱 떨어지기를 원했다. 화강암의 배치는 다소 거칠고 불규칙적으로 해주길 원했다. 담장 공사를 하는 날, 서둘러 갔으나 이미 줄은 맞지 않은 채로, 화강암은 너무 단정하고 규칙적으로 매우 곱게 정리가 돼 있었다. 작업은 끝났고, 수정은 불가했다.
지붕에 올린 기와 중 부득이하게 새 기와를 쓰는 경우 처마 끝에서 기와의 상표가 보이지 않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중에 차양으로 가려질 거라 상관이 없으며 기와의 방향이 그렇게 밖에 안 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살던 아파트 벽에도 못 자국 나는 걸 정말 싫어했다. 한옥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행여나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만지는 나와 달리, 작업자들은 현장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나무 기둥 곳곳에 못을 박고 옷도 걸고 도구도 걸어두곤 했다. 그때마다 속이 얼마나 상했는지 말할 수가 없다.
안방 머리맡에 배치한 전원부가 정면이 아닌 측면에 배치되기를 원했으나 설치하기 위해 공구를 쓸 공간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옆집과의 경계를 위해 세워야 하는 담을 어떻게 쌓을 것인가를 두고 내가 찾아 보낸 사진만 수십 장이었으나, 결국은 아주 흔하고 일반적인 담장을 쌓아두고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하다고 했다.
나는 집 안의 모든 스위치를 아주 단순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모 브랜드의 것으로 넣고 싶었다. 건축가와 함께 그 스위치를 넣으면 얼마나 집이 예쁠 것인가를 두고 아주 즐거운 상상을 나누곤 했다.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가게나 카페 등에 자리 잡은, 바로 그 스위치를 발견할 때마다 이제 곧 우리 집에 저것이 달리겠거니, 생각하며 손에 닿는 그 느낌을 만끽하곤 했다.
그러나 그 스위치를 넣고 싶다는 말을 아주 초반부터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와서 애초에 벽면 공사 때 그 스위치를 위한 박스가 고려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전달이 누락된 것인지 책임 소재를 찾아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싶었으나, '단지' 스위치 때문에 완성한 벽을 다시 뜯자고는 할 수 없었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일반적인 스위치를 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전혀 맘에 안 드는 스위치를 방마다 넣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중지시켰다. 그때부터 부랴부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스위치 디자인을 찾아 헤매야 했고, 그나마 차선을 택할 수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