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석구 변호사.
김종성
이제껏 미국이 북한 견제를 목적으로 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킨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상대국의 전쟁수행능력이나 전쟁 의지를 없앨 수 있을 정도의 고강도·대규모 폭격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를 한반도나 주변 상공에 전개시켜 북한 정권을 위협한 사례들이 꽤 많았다.
일례로, 1980년대부터 미국은 팀스피리트 한미연합군사훈련 때도 B-52를 등장시켰다. 또 연합훈련이 아니더라도, 대북 압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B-52를 내보냈다.
1996년 3월 28일 자 <동아일보>는 워싱턴 특파원발 보도로 '미, 북 붕괴 대비훈련 실시 동해 등서'란 기사를 게재했다. 제1차 북미 핵위기 직후의 소강 국면을 보였던 1995년 상황에 관한 보도였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북한 붕괴 등의 돌발 상황 및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을 동원한 가운데, 동해상 등에서 두 차례 이상의 전쟁억지훈련을 벌여온 것으로 26일(이하 현지 시각) 밝혔다."
위협의 표시로 B-52를 출격시켰던 전례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의 표시로 동해 상공에 B-52를 출격시키는 일들이 있었다. 채널A 보도에 나온 것은 '동해'가 아니라 '일본 동해', 즉 태평양에 B-52가 출격한 사실이다.
미국은 동해뿐 아니라 한반도 본토 상공에도 B-52를 많이 띄웠다. 1976년 판문점에서 충돌이 벌어져 미군 장교 두 명이 목숨을 잃자(판문점도끼사건),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한동안 매일 같이 B-52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켰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도, 괌에서 이륙한 B-52를 경기도 오산 상공까지 출격시켰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 위협 가하고자 할 때, 한반도나 동해상에 B-52를 전개시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 동해에 출격시킨 사실이 대북 위협용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중정상회담 직후에 B-52를 전개시킨 것 자체가 북한에 대한 견제의 표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게 있다. 이 해석에 제약을 가하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7월 27일 미국 태평양공군사령부가 발표한 바와 같이, 미국은 북·중에 대한 견제뿐 아니라 일본 자위대와의 연합훈련을 위해서도 B-52를 일본 상공에 출격시킨다. 이 발표에 따르면, 그때 미 공군 제96폭격편대 소속 B-52 두 대가 일본 자위대 F-15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일본 상공에 진입했다. 한반도나 동해가 아닌 일본 동해에 B-52가 등장할 때는, 이런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미일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에 대한 견제의 표시로 일본 동해에 B-52를 띄웠다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주의할 게 있다. 종전과 현저히 달라진 미국의 태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전처럼 한반도나 동해에 띄워 노골적으로 자극하지 않고, 좀 떨어진 일본 동해에 띄우는 데서 미국의 조심성을 읽을 수 있다.
미일관계의 필요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북중 위협을 위한 일일 수도 있는,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B-52의 일본 동해 출격을 통해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고자 했다고 해석한다면, 북한을 견제하더라도 가급적 덜 자극하겠다는 미국의 의중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판문점에서 북미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 또 B-52가 출격한 다음날 국무부가 민간기관의 구호 인력을 대상으로 북한 여행을 허용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지나치게 위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일을 대북 위협용으로 해석하는 경우에도, 그 위협의 방법이 상당히 조심스럽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