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마을 돌담. 마을 돌담길은 깊다. 벌교바닷바람을 잠재우듯 거칠게 달리다 상처 입은 우리를 보듬는다.
김정봉
노릇노릇한 초가지붕과 구불구불한 고샅은 거칠게 달려온 나를 보듬는다. 두둑한 초가지붕 두께만큼이나 세월이 내려앉았다. 이웃과 이웃이 어깨를 맞대고 정을 나누고 보듬고 살아온 민초들의 인생이 두둑이 쌓여 있는 것이다.
벌교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닷바람이 차갑다. 고샅에 몸을 숨겼다. 바람 빠르기는 돌담 고샅에 내리쬐는 햇발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바람이 잦아들고 볕은 다사롭다. 몇 겹을 껴입은 초가지붕과 햇발에 익은 돌담 덕인지, 고샅은 온기가 돌았다. 뉘 집 돌담 아래에서 쪼그려 앉아 한참 볕바라기를 하고 나니 내 몸에도 따뜻한 기운이 솟았다.
그 기운 덕으로 고샅고샅 둘러보았다. 우선 마을은 동서로 큰 길이 나 있고 남문에서 동헌 쪽으로 가르맛길이 나 있다. 살림집은 주로 큰길 남쪽에 있고 동헌과 객사, 내아 등 관아건물은 북쪽에 몰려있다.
이 중에 'ㄱ'자집(최창우가옥), 대나무서까래집(주두열가옥), 마루방집(김대자가옥), 서문성벽집(김소아가옥), 이방댁(박의준가옥), 주막집(최선준가옥), 향리댁(곽형두가옥), 뙤창집(이한호가옥), 들마루집(양규철가옥)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옛집이다.
낙안마을은 옛집이라도 한집한집 뜯어보기보다는 성곽 위를 걸으며 마을 전체를 바라다보는 맛이 좋다. 동문에서 남문을 거쳐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은 마을에서 조망이 제일 좋다는 길이다. 금전산, 오봉산 아래 초가집들이 다붓하다. 산봉우리는 올망졸망, 둥글둥글한 초가지붕을, 초가지붕은 산봉우리를 닮았다. 둥근 맛에서 오는 한국미는 이를 두고 한 말일 게다.
낙안읍성 굴뚝에서 사농공상이 보인다?
낙안마을 굴뚝은 사농공상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물론 사농공상, 신분을 들먹이는 말은 아니고 조선의 눈으로 바라다본 굴뚝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에서 농(農)에 해당하는 이 마을의 살림집굴뚝은 대부분 널빤지를 덧댄 널굴뚝이다. 마을 고샅에서 만난 첫 살림집 굴뚝도 널굴뚝이고 이방댁, 뙤창댁, 서문성벽집 모두 널굴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