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을 전후하여 <창조>가 창간된 이후, <폐허>, <백조>, <장미촌>, <금성>, <영대> 등의 동인지 출간이 이어졌다.
장호철
<백조>에선 대체로 시 분야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제3호), 박영희의 「꿈의 나라로」(제2호)·「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제3호), 홍사용은 「흐르는 물을 붙들고서」·「나는 왕이로소이다」(제3호), 박종화의 「흑방비곡(黑房悲曲)」(제2호)·「사(死)의 예찬(禮讚)」(제3호) 등을, 소설 분야에서는 나도향의 「여이발사」(제3호), 현진건(1900~1943)의 「할머니의 죽음」(제3호), 박종화의 「목매는 여자」(제3호) 등을 들 수 있다.
<백조>의 문학적 경향을 흔히 낭만주의적인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는 시 분야에 국한된 일이고 소설 분야에서는 역시 당시 유행 사조(思潮)인 자연주의적 성격이 짙었다. 이들의 문학 경향을 '○○주의'로 규정하지 않고 '○○주의적(的)'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 동인지가 어떤 뚜렷한 문학적인 주의나 사조를 표방하기보다는 문학 동호인의 친교적 성격이 강해 무슨 '주의'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로 포장된 퇴폐적 경향의 시와 자연주의적 경향 소설
어쨌든 이들 '백조파'들의 문학적 경향은 서구의 낭만주의와는 달리 병적이고 퇴폐적인 면이 강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은 3·1운동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애수와 비탄, 자포자기, 죽음의 동경, 정신적 자폐증 등의 감상적 경향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 시기, 소설은 잡지와 동인지를 중심으로 작가층이 확대되었고 계몽적인 의식을 넘어 개성의 발현을 지향하거나, 현실에 대한 첨예한 비판 의식을 드러냈다. <백조> 동인들도 지식인의 고뇌를 실감 나게 그렸다. 현진건과 나도향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당대의 사회가 겪는 고민을 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