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돼지해의 첫 일출경(645N/Pro400H)학생들과의 단체사진을 찍은 후 조금 더 떠오른 태양.
안사을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학생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는 참 신나는 일거리였다. 잽싸게 사전답사 일정을 짰다. 숙소와 식당을 들러서 정확하게 예약을 하고 학생들의 도보 동선 등을 미리 파악하여 안전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전답사를 무사히 마치고 계획서까지 모두 승인을 받은 후 갑자기 강릉 펜션 사건이 터졌다. 세월호 사건 후 수많은 수학여행이 취소되었듯, 이번 행사 역시 순탄치 않을 것을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이 하나둘 나를 찾아왔다. 막상 내 앞에 서서 학생은 주뼛거리며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선생님. 그... 제가 드릴 말씀이..."
"이번 체험활동 못 간다고? 강릉 사건 때문에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학생의 침묵을 가로채어 말을 이었다.
"일단 너는 가고 싶어? 네 마음은 어때?"
"아, 쌤. 저는 당연히 가고 싶죠. 완전 기대했다고요."
"그럼 일단 기다려봐.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학생은 두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다음 날 나는 3시간에 걸쳐 모든 보호자에게 전화를 돌렸다. 사전답사 결과를 유선상으로 공유했다. 행사 당일 하루에 두 번씩 안전 상황 등을 문자로 통보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피치 못할 상황이 있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함께 가게 되었다. 사전 협의회에서 아이들은 모두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자신들에게 닥쳐올 시련이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12km의 구보, 멀고도 먼 길
전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뒤가 급한 학생을 위하느라 휴게소에서 두 번을 쉬고 오후 두 시에 울산 정자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해파랑10길'이 시작된다. 우리는 정자항에서 출발하여 경주 양남 주상절리 지점까지 장장 12km를 걸었다. 애초에 고지했던 내용이지만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은 역시 '안 배웠는데요?' 기술을 시전했다.
"12킬로요? 1.2킬로가 아니고요?"
"아, 어쩐지 아까 버스에서 쌤이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왜 대낮에 해질 걱정을 하시나 했네요."
"와, 지렸다. 진심 미쳤다."
아이들은 시쳇말로 '급식체'를 쏟아내며 주섬주섬 먼 길 갈 채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