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지난 2018년 12월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36개월간 교도소(교정시설)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대체복무 대상자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 등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합뉴스
국방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이 같은 입장 변경은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고 전에 없던 우려까지 불러일으켰다. 이번 국방부의 결정은 시기와 절차, 내용 모두에서 낙제점을 줘도 모자랄 만큼 문제가 많다.
만약 국방부가 정말로 진지하게 용어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려고 했다면, 이 문제는 훨씬 이전에 거론했어야 했다. 18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고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도 안 하고 있다가, 게다가 스스로 법안 형태의 안을 낸 뒤에야 이렇게 갑자기 핵심 용어를 변경하는 건 절차적으로도 오히려 국방부가 불필요한 논란에 불을 지피는 셈이다.
국방부의 갑작스러운 결정 때문에 이제 당분간은 대체복무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논의보다는 용어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국방부의 신중하지 못한 일 처리가 문제를 더 어렵게 꼬아버렸다. 용어 변경 절차나 시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가 대안으로 들고나온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병역거부의 개념을 축소·왜곡하고, 현재 병역거부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등 심각하게 잘못된 표현이다.
국제적으로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한다.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는 것을 거부한 무하마드 알리,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며 인종차별 정책을 수행하는 군대를 거부했던 남아공 병역거부자들, 한국 전쟁 당시 징병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로 전후 군산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그 공로로 한국정부로부터 훈장까지 수여 받은 존 콘스 모두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기반한 행동이 병역거부로 인정받았다. 물론 존 콘스처럼 종교적 신앙이 병역거부에 크게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양심의 자유에 포괄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6월 28일 결정문에서 병역거부를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로부터 형성된 양심상의 결정"이라고 정의했다. 대법원 또한 병역거부자의 행위가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지가 무죄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었다. 양심의 자유가 헌법상 가치이니 당연한 일이다. 국방부의 이번 결정은 병역거부를 종교의 영역으로 축소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꼴이 되었다.
국방부가 지워버린 병역거부자들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은 또한 실존하는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지운다. 한국에서는 여호와의증인이 병역거부자의 대다수지만, 역사적으로 병역거부자는 굉장히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기독교인, 불교인 등 종교인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들,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아니키스트, 전쟁을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을 택한 이들,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한국에서도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된 2000년 이후에 전쟁 준비에 동참할 수 없다는 평화적 신념, 사람에게는 '다른 이를 죽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신념, 국가폭력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신념 등 다양한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온 이들이 80여 명 가까이 된다. 1만 9천 명이 넘는 여호와의증인에 비하면 아주 소수지만, 소수라고 없는 존재로 치부할 수는 없다. 국방부의 결정은 이런 다양한 양심을, 다양한 병역거부자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점은 지극히 현실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실제로 종교인만을 병역거부자로 인정하는 나라도 있다. 남아공은 한때 종교인만을 병역거부로 인정했는데, 곧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소승불교 신자가 병역거부를 했는데 소승불교를 종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종교의 구분이라는 게 굉장히 애매하고 국가가 나서서 종교인지 아닌지를 선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결국 병역거부를 종교에만 국한하지 않고 '양심'이라는 더 넓은 범위로 확장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어떤 사람들이 병역거부자인지 심사를 통해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때 종교적 병역거부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 개념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남아공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방부의 이번 결정이 종교인만을 병역거부자로 인정하겠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어가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향후 대체복무 심사의 기준과 절차를 만드는데 국방부의 이번 결정이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