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이희훈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겹겹이 모여 사는 구조라 원래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소리나 냄새까지 공유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이다. 그런데 이에 누군가의 이기심과 배려 없음 등이 더해지면 더욱 불편하고, 급기야는 살 수 없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겠다.
아파트 관리인 20년 경력의 저자는 아파트에서의 가장 흔한 문제인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양한 사연의 갈등부터 주차문제, 편의시설 이용문제, 흡연이나 반려동물로 인한 갈등, 쓰레기 처리문제 등 아파트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건들을 들려준다. 동시에 그간의 경험과 덕분에 얻은 견해를 더해 보다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소음을 호소하며 밤낮없이 인터폰을 해대는 사람, 한 대 이상의 소유 차량을 번갈아 주차하며 가장 좋은 자리를 오랫동안 독점하는 얌체 주차, 상습적으로 공동 현관 앞에 주차해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했다고 걸핏하면 관리소 사람들을 멱살잡이 하는 사람, 어떤 알림도 없이 바닥을 깨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 쓰레기 무단 투기, '분수 좀 꺼 달라, 헬스장 에어컨을 꺼 달라... 아니다 틀어 달라' 지극히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요구하는 사람 등등.
사실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을지도 모르며, 누구나 알고 있을,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꼭 읽어 보길 권하는 이유는, 누군가로 인한 고통과 불편을 호소하는 나 또한 그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이나 불편을 주면서 살아가는 존재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통해 만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들은 거울이 돼 줄 수 있을 것.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여기서 다투고, 저기서 다투고... 해결의 실마리를 던지는 책
"그중에서도 택배 차에 대한 민원은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달랐다.
'택배를 굳이 집에서 받아야 하나요? 차량이 지나다니면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 안전을 위해 차량 출입을 막아야죠. 만약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질 건가요? 그리고 택배기사가 탑차를 낮게 개조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돌면서 배당하면 굳이 지상에 차량이 다닐 필요가 없잖아요.' 이건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의 주장이다.
'내가 돈을 지불했고, 집에서 택배를 받는 것은 내 권리인데 왜 침해하는 거죠? 그리고 지하주차장에 택배 차가 돌아다나면 입주민 차량과 접촉 사고가 날 수도 있고 후방 주시가 되지 않아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데 그건 안전한 건가요? 특히 쌀이나 고구마, 김장김치같이 무거운 물건을 내가 직접 들고 다녀야 하는 건가요? 돈은 내고 권리행사는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거기다 나이 드신 분들은 무거운 물건을 들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라고요.' 이건 택배를 집에서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하주차장으로 택배 차가 다니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장이다." - 본문 42~43쪽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위와 같은 일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데 각자의 사정과 인식 차이로 좀처럼 해결이 쉽지 않다. 책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에는 이처럼 해결책이 반드시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힌트가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의 재치 있고 현명한 중개로 해결된 사례들도 제시돼 있다.
지난 연말, 아파트 관련 훈훈한 뉴스 하나를 접했다. 2018년 11월 '최저임금제에 따라 경비인력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고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주민 몇 명이 이를 막고자 주민 투표로까지 이어지게 했다는 것. 투표 결과 78%가 넘는 주민들이 반대했고, 덕분에 잘릴 위기에 있던 5명의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되었다는 뉴스였다.
경비원들이 해고 당하지 않기 바라며 주민 투표로까지 이끌어낸 아파트 한 주민에 의하면 "돈이 걸린 문제라 주민들이 찬성 쪽으로 기울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또 말한다. "힘들수록 함께 살아야지요, 우리들의 안전과 관련된 경비원 감축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온정 넘치는 아파트인가, 냉랭한 아파트인가... 구별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