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을 넘는 유머를 천명한 사회학자 김찬호 한국 사회의 면면을 예리하고 분석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사회학자 김찬호
김찬호
특히 맥락에 대한 감수성 파트는 유머를 둘러싼 삶의 풍경을 돌아보게 합니다. 작년에 우리 사회를 흔든 중요한 키워드가 '미투'였습니다만, 농담이 희롱이 되는 경우를 저자는 말해줍니다.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사가 회식 자리 등에서 성적 농담을 할 때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음담패설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절대 나눠서는 안 되는 관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상하관계이거나 갑을관계와 같이 평등한 관계가 아닐 때 강요되는 억지웃음은 앞서 저자가 말했던 모멸 권하는 사회의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같이 웃을 수 있으려면 '정서적 신뢰'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머 코드가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데 맞춰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제대로 된 조롱과 풍자는 우리 조상들이 판소리 등에서 했듯이 권력자를 향한 것이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촛불 시민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바로 그러한 풍자와 여유였습니다. 반면 코미디언들조차 종종 구설에 오르는 것이, 이민자,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과 여성을 비하하여 유머를 만들 때입니다. 그들의 낮은 인권 감수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천박한 웃음입니다. 웃음은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한' 관계와 공동체에서 크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한 웃음은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치열한 삶을 살았던 작가 로맹 가리도 유머가 그의 삶에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쓰고 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내내 나의 우정 어린 동료였다. 진정으로 적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순간 유머는 들,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머 덕분이었다. (중략) 유머는 존엄성의 선언이요, 자기에게 닥친 일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의 확인이다."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에서
다시 새해가 밝았습니다. 암담하고 슬픈 소식들이 도처에 있고, 새해가 된다고 해도 우리 삶이 썩 나아지리란 전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새해가 되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새 희망도 품어보고, 새 계획을 만들며 심기일전하게 됩니다. 건강과 일, 공부에 대한 소망도 있겠지만, 이번 새해에는 잘 웃어보자는 목표를 세워보면 어떨까요? 새해 돼지해에 복돼지처럼 배부르고 정서적으로도 넉넉한 삶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새해엔 우리 함께 웃으면 '돼지'요(되지요)!
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김찬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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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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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이기는 유머, 새해엔 잘 웃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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