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당시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됐던 사진.
김종성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상황 전개에 두려움을 품었다. 미국 정부는 한국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무서웠다. 한국 군대가 시위 진압에 나서면, 미국이 묵인했거나 조종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한국민들의 미움을 사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한기 서리가 담화문을 발표한 날, 레이건 대통령은 제임스 릴리 주한미국대사를 통해 전두환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그 해 7월 5일 자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친서에는 '시위 대처에서 자제력을 발휘하고, 반대세력과 대화하라'는 등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군을 동원하지 말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경찰력으로 진압하기 힘들 정도로 국민들이 궐기한 상황에서 미국이 군대 동원에 제동을 걸었으니 전두환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직선제 수용뿐이었다. 이래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는데도, 이순자는 남편이 국민들을 위해 직선제를 해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치켜세웠다. 레이건이 들으면 탄식할 일이다.
단임제가 전두환의 업적? 국민적 대세였다
이순자가 제시한 '민주주의의 아버지 전두환'의 또 다른 근거는 7년 단임제 개헌이다. 자기 남편이 7년 단임제의 전통을 만들었기 때문에, 장기 집권의 전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거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룬 것. 그 덕분에 지금 대통령들이 5년만 되면 착착,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잖아요."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1980년, 우리 국민들은 장기집권이란 것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에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더 이상 장기집권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국민적 대세였다. 전두환과 함께 1979년 12.12 쿠데타 및 1980년 5.17 쿠데타(불법적 계엄확대 조치)를 합작한 신군부 내에서도 단임제 개헌이 대세였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단임제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는데도, 이순자는 모든 게 남편 덕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국민들은 장기집권은 싫어해도 직선제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런 국민적 요구를 무시한 채 전두환은 간선제를 관철시켰다. 정당한 절차를 밟기는커녕 불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데 이어 국민들이 안 좋아하는 간선제까지 관철시킨 상황에서, 전두환이 연임제에까지 욕심을 내기는 힘들었다.
또 간선제가 정통성이 약했기 때문에, 그런 간선제로 뽑힌 대통령에게 연임 기회를 부여하는 것도 힘들었다. 미국 같은 나라는 간선제를 하면서도 1차 연임을 인정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부득이 단임제를 하되, 기간을 길게 해서 7년 임기제로 했던 것이다.
2017년 <헌법학 연구> 제23권 제4호에 실린 '제5공화국 헌법의 성립과 정부헌법개정 활동'이란 논문에서 이병규 동의과학대학교 교수는 "간선제를 채택했을 때 그 보완책으로 제시한 것이 5~7년의 단임제와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라고 짚었다. 당시 정치상황에서 간선제를 택할 경우, 단임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순자의 말처럼 전두환의 결단 때문에 단임제 개헌이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의 의심... "권력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조짐"
그런데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에는 심각한 의심이 깔려 있었다. 전두환이 7년 단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한 것은 7년 단임제를 고수할 생각에서가 아니라 간선제를 고수할 생각에서였다. 만약 국민들이 고분고분하게 있었다면, 7년 단임제를 뒤엎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이런 판단을 내린 곳이 있다. 전두환을 가장 많이 관찰했던 주한미국대사관이다.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으로서 1986년부터 3년간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제임스 릴리는 동아시아 근무 경험을 담은 <중국통>(China hands)이라는 회고록에서 전두환의 위험성을 이렇게 분석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8년 임기가 끝나면 평화롭게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공언을 해왔지만, 자신의 권력을 쉽게 양보하지 않으려는 조짐을 보였다. 일부 국민들의 커지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권력을 장악할 때처럼 무력을 동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전두환이 군대를 동원해 7년 단임 약속을 폐기할 가능성을 미국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 전개가 이랬음에도 이순자는 "남편이 단임제를 확립시켰기에 후임자들이 단임제 약속을 착착 지키고 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새해 벽두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이순자의 거짓 망언은 2019년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전두환의 주변에서 전두환을 칭송하는 망언이 나온다는 것은 아직 그 시대의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직 한국에는 유신 적폐, 박근혜 적폐뿐 아니라 5공 적폐도 살아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0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공유하기
1995년 전두환의 말, 2019년 이순자의 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