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경영 정상화를 바라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는 대한항공 조종사들.
참여연대
[해고 조종사] 자신의 목소리를 냅시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1999년 8월 30일, 대한항공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음날 비행 일정에서 제외되었던 전직 조종사 하효열입니다.
조종사가 비행을 하지 않으면 비행수당, 즉 월급의 60%가 사라집니다. 헌법이 노동자에게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 노동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항공은 공식징계 절차도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제게 엄청난 불이익을 주었던 것입니다. '땅콩 회항' 박창진 사무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에도 대한항공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재벌의 갑질이 싫다면서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또한, 한마음으로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싸우다가도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겠다 싶으면 상대방을 견제하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면 결국 진실은 사라지고 자신의 이익을 외치는 목소리만 남습니다. 그래서 노동과 자본 사이에 존재하는 진짜 이슈, 즉 부의 편중이나 소득 양극화의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종국에 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유는 경영자 위주로 불공정하게 나누어지던 이익을 노동자와 함께 나누고,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노동조합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법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노사가 동등한 지위로 만나 합의를 봐야 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갑질이 난무하고, 갑질에 속수무책인 세상은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합의를 볼 수 있게 하는 노동조합이라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항공의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든 순간부터 안전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사례만이 아닙니다. 대한항공에서 조종사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이전에도 네 번 있었습니다. 회사의 방해로 그들 역시 조종복을 벗거나, 협박에 못 이겨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 7월에 직원연대지부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박창진 지부장은 회사에서 끊임없이 경고를 받았고, 같이 활동하던 조합원들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기도 했습니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 일가만이 아니라 대한항공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대한항공을 실제로 움직이는 임직원들, 대한항공의 주주들,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승객들 모두 대한항공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법적 소유권과는 별개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대한항공이라는 기업에는 그에 맞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을 향해 목소리를 냅시다. 노동자들, 승객들, 주주들의 말을 막으려는 자들을 향해 "내 말을 막지 말라!"고 소리 지릅시다. 2000년 조종사 노동조합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대한항공에서는 운항 중 단 한 건의 인명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의미를 잘 새겨봅시다. 자, 이제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 대한항공을 향해 목소리를 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