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마곡천 국사봉에서 발원한 마곡천이 마곡사를 관통하여 흐른다. 백범선생은 마곡사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원성스님이란 법명으로 출가하였다. 마곡사에는 삭발바위,백련암, 백범당과 '백범명상길'이 조성되어 있다.
변영숙
일제강점기 마곡사와 만공스님과 백범 김구 선생의 인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만공은 마곡사 주지를 지냈고, 백범은 은거생활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독립운동가다.
만공이 마곡사 주지로 있던 1937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서 만공이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와 병합하려는 시도에 맞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호통을 치며 단호하게 반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31본산 주지 중에서 만공만이 창씨 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에 독립운동가로서의 만공의 삶을 재조명하고 독립유공자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백범 선생은 일본군 중좌 살해범으로 낙인찍혀 인천교도소에서 사형수로 복역 중 탈옥해 마곡사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원종스님이란 법명으로 출가했다.
응진전 옆에 그가 지냈던 백범당(백범기념관)과 해방 후 다시 찾아와 심었다는 향나무, 승려가 되기 위해 삭발식을 치르며 눈물을 흘렸다는 삭발바위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곡사, 삭발바위, 군왕대 및 백련암을 연결한 '백범 명상길'이 조성돼 있다.
마곡사가 일제강점기에 만공, 백범과 같은 '위험인물'들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호국불교의 전통을 가진 화엄도량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마곡사의 오랜 내력과 절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크다. 새삼 마곡사의 저력이 놀랍다.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백범당에 걸린 서산대사의 선시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즐겨 사용하시던 휘호라고 한다. 새해, 마곡사가 세상에 전하는 '화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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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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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을 스님으로... 감히 독립운동가를 품어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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