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이른 아침, 기차역 대합실에는 옅은 설레임이 흐르고 있다.
김숙귀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단다.' 어릴 적 어른들께선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은근히 웃곤 했었다. 지금이야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어른도 없고 또
그 말을 믿을 아이도 없지만 그때 어른들께서는 왜 있지도 않은 얘기를 하셨을까. 한 해의 마지막 날만큼 쉽게 잠들지 말고, 가고 오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지며 밤을 보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 이제는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아야 할 때다.
그래서 기차여행을 떠났다. 종종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떠나곤 한다. 마산역에서 순천역, 그리고 다시 마산역까지 네 시간 동안 느리게 가는 열차의 창가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편안하고 여유롭다. 밀려있는 사념의 보따리를 마음껏 풀어내고, 가끔은 아프지만 또다른 나를 사심 없이 들여다본다. 돌아올 때쯤이면 한결 마음이 넉넉해져 있다.